추기경들 한마디씩… 콘클라베 비밀이 샌다?

  • 입력 2005년 4월 2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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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개혁 진영 간 대결 펼치다 막판 대승, 샴페인으로 축배 들며 성가 합창.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한 콘클라베의 뒷얘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의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독일의 슈피겔 등은 21일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의 이면(裏面)을 소개했다.

▽선거 이틀째 점심시간이 고비=18일 첫 투표에서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추기경은 개혁 성향의 대표주자로 78세 동갑인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이탈리아 추기경과 나란히 40표를 얻었다.

그러나 19일 아침 투표에서 그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추기경들의 표심이 라칭거 추기경 쪽으로 기우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점심 휴식시간을 계기로 마르티니 추기경을 지지하던 진보 성향 추기경들 사이에서 라칭거 추기경 지원 분위기가 형성됐다. 마르티니 추기경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 대한 추기경들의 우려가 확산됐던 것.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라칭거 추기경은 마침내 이날의 3번째 투표, 콘클라베 개최 기준으로는 총 4번째 투표에서 전체 115표 중 최소 100표, 많게는 107표를 얻으며 제265대 교황에 선출됐다. 오스트리아의 크스토프 쇤베른 추기경은 “정확한 숫자는 말할 수 없지만 사실상 만장일치였다”고 밝혔다.

투표 결과가 발표된 뒤 추기경들 사이에는 잠시 긴장이 흘렀다. 머리를 숙인 채 미동조차 하지 않던 새 교황이 “짧은 기간 평화의 사도가 되길 바란다”며 교황직을 수락하면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스티나 성당 관계자들은 이어 새 교황 선출을 알리기 위해 소각로에 불을 붙였지만 흰 연기를 피워 올리는 데 실패했다. 연료인 화학약품을 잘못 다뤘기 때문. 이 때문에 시스티나 성당 안은 한때 연기로 가득 차는 소동이 벌어졌다. 2번의 시도 끝에 흰 연기가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솟아올랐다.

이날 밤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들과 샴페인을 터뜨리며 함께 저녁을 먹었으며 라틴어 성가 몇 곡을 합창했다. 27년 전 같은 상황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민요를 부른 것과 대조적이다.

▽‘교황직을 향한 기획’=라칭거 추기경은 주도면밀한 준비 아래 콘클라베 동안 지지 세력을 넓혀 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추기경들과 아침식사를 한 것 외에도 이틀째 점심시간엔 미국 추기경들에게 어린이 성추행 문제 해결에 함께 노력하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종교 간 대화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안심시켰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을 주재하는 이점도 누렸다. 장엄하면서도 감동적인 장례식 진행은 추기경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추모기간에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가톨릭의 최대 문제로 서유럽의 세속화가 거론됐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칭거 추기경은 가장 잘 준비된 후보였다”고 프랜시스 조지(미국 시카고) 추기경은 말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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