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엄마랑 만든 ‘동화나라’ 환상의 여행

  • 입력 2005년 4월 21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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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작가들만 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황사이야기’는 보통 주부 홍유경(34) 씨가 딸 김은빈(10) 양을 위해 직접 만든 작품이다. 사진에 보이는 그림도 홍 씨가 직접 만들었다. 용처럼 보이는 뱀의 뿔은 하늘에서 내려 온 착한 뱀을, 몸통 주변의 흩뿌려진 노란색 물감은 뱀의 몸과 피가 황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전문 작가들만 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황사이야기’는 보통 주부 홍유경(34) 씨가 딸 김은빈(10) 양을 위해 직접 만든 작품이다. 사진에 보이는 그림도 홍 씨가 직접 만들었다. 용처럼 보이는 뱀의 뿔은 하늘에서 내려 온 착한 뱀을, 몸통 주변의 흩뿌려진 노란색 물감은 뱀의 몸과 피가 황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2005년 4월 12일(화) 바람이 몹시 분 날.

내 이름은 김은빈. 열 살 된 예쁜 여자아이다. ㅋㅋ. 나는 엄마랑 같이 동화책을 읽을 때가 제일 좋다. 엄마는 나를 공주님으로도, 달님으로도 만들고, 귀여운 염소로도 만든다.

저녁이 됐는데 엄마가 “오늘은 한번도 못 본 새 동화를 만들어 줄게”하시며 어디론가 데리고 가셨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집에는 동화작가라는 아저씨 한 분과 아줌마 한 분, 엄마처럼 동화를 만들러 오신 아줌마 한 분이 계셨다.

나머지 아저씨 두 분은 기자라고 한다. 한 아저씨가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줘 참 좋았다.

동화작가들과 주부들이 동화 만들기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동화작가 권윤덕 정해왕 씨와 주부 서미경 홍유경 씨. 정 작가는 “얼마나 잘만드냐 보다 아이와 함께 하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병기 기자

엄마는 동화 한 편을 미리 써 오신 모양이다. 제목은 ‘황사 이야기’다.

그저께 엄마랑 황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것으로 동화를 만드셨다. 왕자와 공주도 나오고 노란 뱀도 나오고 코 큰 도깨비도 나왔다. 나는 참 재미있었는데 동화작가 아저씨는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보다. 간간이 엄마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

‘탕수육 아저씨’는 무언가를 계속 받아 적고 있었고 또 한 아저씨는 카메라로 우리 모습을 자꾸 찍어댔다. 숙녀가 자장면 먹는데 사진을 찍다니. 매너도 없어.

요즘 하늘이 노란 것이 옛날에 슬프게 죽은 노란 뱀 때문이라고? 그럼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은 큰 코끼리가 울기 때문일까? 하얀 눈은 하느님이 흰 설탕을 뿌리는 걸까? 비나 눈은 왜 오는 걸까.

밥을 먹고 났더니 아줌마가 떡이랑 딸기랑 과자를 내오셨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 나왔는데 탕수육 아저씨가 놀려댔다. 창피했다.

너무 피곤해서 막 잠들려 하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동화 속의 노란 뱀이 막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잘 생긴 왕자님 옆에는 내가 있고. ㅋㅋㅋ. 공주님은… 나다. 내일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엄마가 만든 동화를 자랑해야지.

○ 창작동화에 도전하다!

4월은 동화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 부모들이 동화책을 사주거나 읽어주는 것도 좋지만, 생활 주변의 소재로 직접 동화를 만들 수도 있다.

어설프더라도 직접 만든 동화 속에는 아이와 부모만의 기쁨이 가득 담긴다. 보통 엄마 홍유경(34) 씨가 동화작가 정해왕(40) 권윤덕(45·여) 씨의 도움으로 동화 만들기에 나섰다.

먼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내용을 정해야 한다. 아이가 요즘 잠을 안 잔다든지, 너무 논다든지, 함께 동물원에 다녀왔다든지 등 어떤 주제든 상관없다.

홍 씨가 정한 주제는 황사현상. 며칠 전 아이와 황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우연히 아이 일기장에 어설픈 내용이 있어 더 자세하게 알려주고 싶어서란다.

먼 옛날 우리나라에 백두국 왕자와 한라국 공주가 살고 있었는데 코 큰 도깨비의 방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해 하늘이 보낸 노란 뱀을 타고 멀리 도망갔다는 것. 쫓아온 두 나라 병사들이 쏜 화살 때문에 뱀이 죽어 그 몸과 피가 모래 강으로 변했는데 해마다 봄철이면 그 모래와 먼지가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까지 날아온다는 내용이다(아래 동화 전문 참조).

정 작가는 “황사라는 현상을 노란 뱀으로 풀어 낸 것은 아주 동화적이고 적절한 설정”이라며 “몇 가지 동화가 가져야 할 요소를 더하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고 평했다.

○ 소재 주제 대상을 명확히 해야

동화를 쓰려면 무엇을 쓸 것인가(소재), 왜 쓰는가(주제), 누구에게 읽힐까(대상)가 명확해야 한다. 홍 씨의 ‘황사 이야기’는 아이에게 황사현상에 대해 설명해주려는 목적이 분명한 작품.

하지만 구조를 기존 이야기(로미오와 줄리엣-두 가문 남녀의 사랑, 견우와 직녀-슬픈 헤어짐)에서 빌려온 까닭에 의도와 달리 다른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두 가문을 백두국과 한라국으로 빗대다보니 마치 우리나라 남북문제처럼 보였고, 헤어짐을 이끌어 내려니 엉뚱하게 코 큰 도깨비가 등장한 것.

하늘이 보낸 착한 뱀이 환경 문제인 황사로 변한 것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정 작가는 “기본 줄거리와 주인공의 성격을 미리 정하지 못한 채 여러 이야기를 빌려오면 의도하지 않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게 된다”며 “이 경우 주제가 산만해져 아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동화라고 해서 기본적인 논리나 관습, 자연 질서에 어긋나서는 곤란하다.

죽은 뱀의 몸과 피에는 한계가 있는데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날아오기 어렵다는 것.

매년 음력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한 번씩 만나서 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이야기는 실제 이 무렵 비가 많이 오는 자연현상에 부합한다.

황사(黃沙)를 황사(黃蛇)로 상상한 것은 좋지만 하늘이 뱀을 보냈다는 것도 우리 상식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발상. 차라리 거인이나 큰 천사로 설정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동화 속 주인공은 슈퍼맨이 아니다

동물이나 사물을 의인화하려면 별주부전의 꾀 많은 토끼처럼 그에 걸맞은 이미지나 이유가 있어야 한다. 동화 내용 중 주인공 동물을 다른 동물로 바꿔도 상관이 없다면 설정이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해당 자연 현상이나 동물에 대한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캐릭터의 능력도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정 작가는 “예를 들어 의인화한 부엌 숟가락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나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한다면 곤란하다”며 “숟가락은 숟가락 수준의 이야기와 능력을 갖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콩쥐 팥쥐’에 나오는 두꺼비는 몸으로 장독의 구멍을 막아주는 정도의 능력을 가져야지, 새 독을 사주는 능력을 보인다면 이야기가 식상해지기 쉽다.

또 ‘착하게 살아야 해’라고 문장으로 명시하기보다 착하게 산 주인공의 삶을 묘사해 감동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장도 이해를 돕기 위해 단문으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

단어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홍 씨가 이야기에 사용한 ‘계략’ ‘졸지에’ ‘운명’ 같은 용어는 아이의 수준에 따라 다소 난해할 수 있다. 상황에 따른 조어는 동화의 이미지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

○ 그림에도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된 뒤 권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 홍 씨가 처음 생각한 그림은 뱀 위에 왕자와 공주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앞면 참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홍 씨는 비슷한 이미지의 사진을 오려 붙이는 방법을 택했다.

권 작가는 “홍씨가 뱀 머리를 사진으로 구하기 어려워 용머리를 대신 사용했지만 큰 문제는 없다”며 “‘뱀 머리에 왜 뿔이 달렸어’라고 아이가 물으면 ‘하늘이 보내 준 착한 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또 뱀의 몸이 모래와 먼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통 주변을 노란색 물감으로 흩뿌린 부분도 아이가 물으면 의도한 대로 설명을 해주면 된다는 것.

배경의 분홍색과 주홍색은 어두운 느낌을 줄 수 있는 뱀 이미지를 중화시키고 왕자와 공주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주면, 그림 자체도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권 작가는 말했다.

부모들이 직접 그린 동화 그림은 솜씨는 서툴러도 작가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과 정성이 배어나오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과정이 작품 자체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 작가는 “스토리 구성이 어려우면 ‘일-일본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이 나라에는 큰 거인이 살고 있었어요’라는 식으로 간단한 숫자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며 “솜씨를 떠나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동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동화보기▼

옛날, 우리나라 북쪽과 남쪽에 백두국과 한라국이 있었습니다.

백두국 왕자와 한라국 공주는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두 나라의 왕은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키고 두 나라를 합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나가 되면 더 평화롭고 힘 센 나라가 될테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두 왕은 큰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합쳤을 때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새 나라의 왕은 나이도 많고 아는 것이 많은 내가 돼야지. 안 그런가? 아우님.”

“안됩니다. 새 나라의 왕은 젊고 용감한 제가 돼야 합니다.”

두 왕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싸우다가 결국 다시는 서로 얼굴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긴 울타리를 세우고 백성들도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제부터 두 나라 백성들은 자기 나라 땅에서만 살고 이 울타리를 넘어가면 안 된다. 넘어가는 사람은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왕자와 공주는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 꿈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은 하늘에 간절히 기도를 드렸지요.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저희들은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하늘이 열리면서 커다란 황사(黃蛇) 한 마리가 내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황사를 타고 북쪽으로 도망쳤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두 왕은 병사들에게 왕자와 공주를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지요.

결국 도망가던 왕자와 공주는 병사들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쏜 화살이 황사의 눈에 맞았지요.

황사는 황금 피를 흘리면서 거대한 배를 드러내고 쓰러졌어요.

두 나라 병사들은 두 사람을 억지로 떼어내서 각각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갔지요.

세월이 흘러 황사의 시신은 누런 모래가 되었고 그 곳은 점점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사막이 되었답니다.

그러니까 황사(黃蛇)가 황사(黃沙)가 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그 일이 있었던 봄이 되면 누런 모래(황사)가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까지 날아온답니다.

(정해왕 권윤덕 작가의 도움을 받아 수정한 홍유경씨의 동화 전문)

:도움주신 작가:

▽정해왕

△연세대 국문과 졸 △1994년 ‘개땅쇠’로 MBC창작동화대상 수상 △‘어린이책 작가교실’ 대표. 저서 ‘코끼리 목욕통’ ‘위대한 개들의 이야기’ ‘날아가는 화살을 잡은 원숭이’ ‘지혜가 하나씩 30가지 꾀 이야기’ ‘오른발 왼발’ ‘빨간 늑대’

▽권윤덕

△서울여대 식품과학과 졸 △아들 만희에게 보여줄 그림책을 만들다가 작가로 입문 △저서 ‘만희네 집’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씹지 않고 꿀꺽 벌레는 정말 안 씹어’ ‘시리동동 거미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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