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무부 “폴란드, 힘 과신하다 세계대전때 수난”

  • 입력 2005년 4월 15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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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동북아 균형자론’을 해명하려고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에게 19세기 동북아 및 20세기 유럽의 외교사가 주는 ‘교훈’을 언급했다.

이 관계자가 “학문적으로 말하면…”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오고간 대화 내용은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미국의 ‘훈계’로 해석될 여지가 적지 않다.

그는 먼저 제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 주변 강대국에 의해 수난을 겪은 폴란드를 거론하며 “외교정책은 국력에 걸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가 ‘지역 세력(regional power)’임에도 (주변 강대국과의 국력 격차에 대한 고려 없이) 과도하게 자신의 힘을 설정하는 바람에 수난을 겪게 됐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은 폴란드, 네덜란드보다 인구나 경제 규모가 크다”고 반박한 뒤 “한국은 강대국 역할을 할 생각이 없으며 중견국가로 위치 설정을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19세기 대한제국 말 당시의 동북아 역사도 끄집어냈다. 그는 한국이 스스로 안보문제를 해결할 힘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19세기 역사는 반성할 요소가 있다”며 “당시 (대한제국이 당한 것은) 외부 요소도 있지만 전략적 오판도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당시 대한제국은 (당면한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외부 세력과의 연대만을 추구한 전략적 오판이 있었다. 지금의 한국이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이 일본 러시아 청나라의 힘을 빌려 국운을 세우려 했지만 번번이 버림만 받지 않았느냐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데 대한 우려도 담겨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방문 기간 중 미 행정부 및 의회를 상대로 “한국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추진할 것이며, 필요에 따라 동맹을 바꾼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지만 한미 간 인식차는 적지 않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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