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스승·선생·교사·강사

  • 입력 2005년 4월 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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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70년대만 해도 도심 초행길에서 가장 요긴한 ‘길잡이’는 초중고교였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꽤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학교는 대형 건물과 고층 아파트에 파묻혀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사회적 위상도 덩달아 떨어졌다. 두 가지 속설이 있다. 하나는 사회환경설. 학교 밖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상대적으로 학교가 초라해졌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본인귀책설. 학교가 사회변화를 읽는 데 실패해 위상 저하를 자초했다는 주장이다. 반은 맞고, 반은 엄살이다.

사교육에 창피를 당하고 있다지만 학교는 여전히 제도교육의 핵이다. 졸업을 못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결석은커녕 지각조차 안 하려고 애들은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로 몰려간다.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교의 위세는 더 세질 것이다.

위상이 떨어진 건 학교가 아니라 교사들이다. 교사는 말한다. 대우는 시원찮고, 잡무는 많고, 애들은 말을 안 듣고, 교권 침해는 늘고 있다고. 그래서 힘들다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갖고 있는 ‘교육평론가 자격증’ ‘정치분석가 면허증’ 때문에 더 피곤하다고 한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 데다, 툭하면 정치논리로 교육을 재단한다는 푸념이다.

그러나 학교 밖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교사의 정년은 62세다. 학교 담만 넘으면 이태백이 넘쳐나고, 사오정과 부닥치고, 오륙도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요즘이다. 정년 보장만큼 큰 대우가 없다. 연금도 쏠쏠하다. 애들이 까불고, 학부모가 고개를 쳐든다 한들 아직은 교사가 ‘갑(甲)’의 위치에 있다. 취업포털 ‘스카우트’가 지난달 직장인 1400여 명에게 물어봤다. “직업을 바꾼다면 뭐가 되고 싶습니까.” 1위가 교사다. 전교조나 한국교총의 힘도 세다. 최북단 강원 고성군의 명파초등학교에서 최남단 제주 마라분교까지 교사는 모두 대졸 이상이다. 그렇게 균질하면서도 학력이 높은 직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대우, 인기, 지위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사 본인들은 겸손하다. 교육 문제로 시끄러울 때마다 교육부의 ‘지시’, 교장 모임의 ‘결의’, 교원단체의 ‘요구’는 들려도 교사들의 ‘의욕’은 보이지 않는다. 스승은 학교 밖까지 책임지고, 선생님은 학교 안까지를 책임지지만, 교사는 자기 교실만 책임지고, 강사는 자기 과목만 책임지면 된다. 지금 교육자들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교사와 관련된 문제의 상당수는 역할과 기대의 차이에서 나온다. 학교 밖에서는 스승과 선생님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기대수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교사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힘들지 않은 직업은 사라졌다. 사회는 요즘 ‘안주(安住)는 안 된다’는 경고로 가득하다. 그래서 기술자는 기능장을, 과학자는 최고 과학자를, 소리꾼은 명창을 지향한다. 이제 학교에서도 교사를 넘어 큰 스승, 대선생이 나오도록 분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니까 ‘교원평가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교언(敎諺)은 여전히 유효하다.

심규선 논설위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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