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체 사장 中 팡리 "한국연수로 자수성가 꿈 이뤘죠"

  • 입력 2003년 12월 29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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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였던 중국인 팡리(오른쪽)는 한국 연수생 시절 경험을 살려 의류업체 사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제공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어부였던 중국인 팡리(오른쪽)는 한국 연수생 시절 경험을 살려 의류업체 사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제공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어부에서 의류업체 사장님으로.’

매일 바다에서 12시간씩 비바람과 싸우며 배를 탔지만 생활은 어려웠다. 목숨 걸고 일해서 버는 수입은 한국 돈으로 연간 150만원이 고작이었다.

중국 어부였던 팡리(方力·34)는 한국 연수를 통해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어두운 기사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팡씨는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인생을 화려하게 바꿔놓은 사례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29일 발간한 ‘외국인 연수생 모범 사례집’에는 어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팡씨의 인생 역전 드라마는 1999년 초 그가 ‘한국으로 갈 연수생을 모집한다’는 현지 신문 광고를 접하면서 막을 올렸다. 처자식을 두고 떠나는 데 용기가 필요했지만 ‘돈도 벌고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99년 7월 한국에 도착한 팡씨는 경기 양주시의 한 의류업체에서 일하게 됐다. 그의 한국 생활 역시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말이 전혀 안 통했고 생활 습관도 달랐다. 회사 직원들과 오해와 갈등을 겪길 여러 차례, 그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힘들 때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했다.

틈나는 대로 한국어를 배우고 궁금한 건 동료들에게 물어보면서 적극적으로 생활했다.

서툴기만 하던 재봉 기술은 갈수록 향상됐고 옷감에 대한 지식도 쌓였다. 팡씨는 3년 만에 어부 티를 벗고 완전히 의류 기술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2002년 7월 그는 귀국했다. 고향인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서 일자리를 얻으려 했지만 취업은 어려웠다. 나이가 많다는 게 그 이유. 팡씨는 결국 자신의 돈으로 올해 1월 작업복을 주문 생산하는 조그만 의류 공장을 세웠다. 3개월간 치밀한 시장 조사 끝에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

경영자로 나선 팡씨에게 한국에서 얻은 경험은 든든한 밑천이 됐다. 적절한 작업 분담으로 직원들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고 성과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품질 관리에 힘썼고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 시간에 좋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런 노력은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팡씨는 이제 기계 16대에 25명의 직원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중국 현지 인력송출업체인 웨이하이국제경제기술공사는 현지 인터뷰를 통해 팡씨의 새해 포부와 한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작업 물량이 늘어 내년에 공장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 돈도 모두 한국에서 번 것이지요. 공장을 확장하면 매년 순이익이 한국 돈으로 3000만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인생을 바꾼 한국 연수,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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