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어머니의 산…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 입력 2003년 12월 28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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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들이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네/ 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선조 남명 조식은 두류산(지리산)의 초연함과 장엄함을 이렇게 읊었다.

워낙 크고 깊고 넓어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지리산. 산자락을 지나 돌아도 산은 여전히 산이며, 골을 돌고 돌아도 계곡은 계곡일 뿐.

서산대사는 일찍이 “지리는 장엄하되 빼어나지 않다(智異壯而不秀)”며 수려하기보다는 웅장한 남녘의 진산이라고 찬탄했다.

지리산에는 우리 역사가 살아 있다. 임진왜란과 민란(民亂), 동학농민운동을 거치면서 민초들의 한(恨)과 변혁에의 열망이 산자락 곳곳에 배어 있다.

그래서 지리산에 오르는 이들은 가슴 속에 그 많은 역사의 편린(片鱗)을 품고 다닌다고 했다. 흐르는 땀보다도 마음 속 눈물과 울음의 힘으로 그 산을 오르내린다.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숲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마음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김지하 시 ‘지리산’).

지리산은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좌우 이념 대결’에 너무도 처참하게 그을려졌다.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의 와중에 형은 빨치산으로, 아우는 토벌대로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다.

그 역사의 생채기를 분단문학의 꽃봉오리로 피워낸 것은 시인 신동엽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산사람들의 얘기’를 진혼곡(鎭魂曲)에 담았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갔다…’(‘진달래 산천’).

그리고 80년대에 조정래의 장편 ‘태백산맥’이 치솟아 오른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다.

어무이산이기도 하고, 오메산이기도 하다. 끝없는 포용과 용서의 산이다. 지리산은 모든 아픔을 어머니처럼 끌어안고 그 슬픔과 설움을 삭이면서 새 생명의 목소리를 키워왔다. 21세기 ‘살림의 정신’ ‘생명의 정신’에 주목하는 이들이 다시 지리산을 돌아보는 이유다.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 지리산은 새로운 세기의 화두(話頭)를 지피고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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