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盧 총선발언` 반발]“대통령인가 선대본부장인가”

  • 입력 2003년 12월 24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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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4일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임한 비서관들과의 오찬에서 ‘한나라당 대(對) 열린우리당과 대통령’간의 대결구도를 언급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편에 서서 총력전을 펴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측의 총선지원 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온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와 대선자금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내년 1, 2월경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것은 물론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까지 총선에 총동원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제3당으로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앞으로 정국을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의 양강(兩强)구도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민주당과의 통합론은 힘을 잃을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출마할 지역구와 경쟁예상 후보 등을 묻고, 일부 지역구 출마 예정자에겐 “만만치 않겠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또 “부산 쪽 분위기는 어떠냐”며 총선 승부처로 꼽히는 부산의 동향에 관심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의 자금사정에 대해 “만약 박상규(朴尙奎)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김원길(金元吉) 의원이 재정위원장으로 있었다면 (자금이) 많이 들어왔을 것”이라며 “그러나 두 의원이 후보단일화 이후 저쪽(한나라당)으로 가는 바람에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많지 않았고, 재정전문가가 아닌 이상수(李相洙) 의원이 책임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명백한 사전선거운동 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한나라당 박진(朴振) 대변인은 “선거중립내각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내년 총선을 ‘한나라당 대 노 대통령’이라는 인위적 구도로 치르려는 발상으로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도 “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린우리당을 못 도와줘 안달이었는데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당 김영환(金榮煥) 중앙상임위원 겸 대변인은 “청와대는 우리당 선거대책본부이고 노 대통령은 선대본부장인가”라며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어려운 환경에서 출마하는 정치신인인 퇴임 비서관들에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격려 차원의 덕담”이라며 “총선 구도나 전략을 얘기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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