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덕소모임` 보도]"초당적 모임을 `美편향`으로 모함"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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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2일 ‘덕소별장모임’ 당시 기념사진 촬영을 위한 자리배열은 시사점이 많다. 참석자 10명 중 초청자인 일민(一民·김상만 당시 동아일보 사장) 선생이 앞줄 중앙에 자리하고 그 오른쪽엔 김대중씨, 왼쪽엔 이철승씨가 섰다. 둘 다 야당인사. DJ는 그해 4월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패배한 직후 의문의 교통사고로 요양 중이었는 데도 초청에 응했고, 이씨는 그해 5월 총선에서 의석을 크게 늘린 신민당의 떠오르는 젊은 리더 중 하나였다. 당시 윌리엄 포터 주한 미국대사가 참석 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표명한 이후락씨(중앙정보부장)는 박권상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과 함께 뒷줄에 섰다. 포터 대사는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서도 참석자 명단 첫머리에 권력 실세인 이후락씨 이름을 올릴 정도로 관심이 많았지만, 이는 외교관인 그 자신의 관심이었던 듯하다. 자리배열만 봐도 덕소모임의 주빈은 이후락씨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김영삼 이철승씨를 직접 만나 증언을 들어봤다.》

▼김영삼 前대통령 인터뷰▼

김영삼 前대통령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22일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22일자 동아일보를 보면서 31년 전의 덕소모임을 회고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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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임이 처음이었나.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이런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김상만 회장이 살아계실 땐 인촌기념관에서 1년에 한두 차례 (여야 정치인들이) 모였다. 그런데 미국 대사가 합석한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야당인 나도 미국대사를 자주 만났다. 한 달에 한두 차례 만나 한국 정세에 대해 얘기했다.”

―KBS는 당시 모임을 거론하면서 동아일보가 마치 미국 편향적인 것처럼 몰고 있는데….

“한마디로 모함이다. 미국대사관은 상당히 많은 국내 사람들과 접촉한다.”

―김대중씨와 이철승씨도 모임에 함께 참석했던데….

“당시 나하고 DJ하고 소석(素石·이철승씨)은 서로가 아주 (사이가) 안 좋았다. 세 사람에겐 대화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세 명이 덕소모임에 참석한 것은 동아일보와 김상만 회장 개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김 회장은 특별한 분이었다. 그분은 영국 신사라고 했다. 아마 에든버러에서 공부했지.”

―당시 동아일보는 어땠나.

“신문 중 제일이었다. (정권의) 탄압도 많이 받았다. 박정희가 동아일보에 일절 광고를 못 주게 할 때는 나와 학생들이 동아일보 살리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KBS는 마치 모임에 ‘텔레비전 여배우’가 동원된 것처럼 묘사했는데….

“그런 여자들은 전혀 없었다고 기억한다. 필요도 없었다. 인촌기념관에 모였을 때도 그랬다. 김상만 회장은 그런 일을 안 하는 분이다. 김 회장은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국식 가든파티를 하며 담소하는 스타일을 좋아했다. 그런데 왜 여자가 필요한가.”

―모임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왜 일갈했나.

“당시 박정희와 (나의) 관계가 아주 안 좋았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그런 모임이 있으면 거침없이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

―동아일보와 관련해 기억나는 게 있다면….

“광고탄압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나선 적이 있다. 박정희는 집권 18년 동안 나를 안 만났으나 그 무렵에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박정희를 만났을 때 이 문제를 심하게 따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족지인 동아일보를 말살하는 것은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박정희가 ‘나에게 맡겨 달라’고 하더라. 그때 곧 해결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독재자는 언론탄압을 주요한 무기로 삼는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철승 상임의장 인터뷰▼

이철승 상임의장

이철승(李哲承)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은 22일 인터뷰 내내 동아일보에 대한 KBS의 왜곡 보도에 대해 흥분했다.

―KBS는 덕소모임에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초청된 것만 부각시켜 동아일보가 마치 뒤로 권력에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처럼 보도했다.

“명백한 곡해다. 일민 선생이 자신의 안위를 위한다면 미국 대사와 이 부장만 초청하지 왜 나나 YS나 DJ 같은 야당 지도자들도 초청했겠는가. 그 모임은 여야와 국회 행정부의 중심인물들과 미국 대사가 만나 한미친선관계를 공고히 하는 자리였다. 당시 여야는 싸웠지만 그런 자리에서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 초당적으로 이야기하고 덕담하고 그랬다. 그 산파역을 동아일보가 맡았다. 동아일보는 당시 정계의 화합과 한미관계의 발전에 관심이 컸다.”

―덕소모임은 특별했나.

“서울 종로구 계동 인촌기념관에서도 그런 모임이 자주 있었다. 덕소모임도 관례적인 회동에 불과했다. 날도 더우니까 교외로 나가자고 해서 부담없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자리를 ‘공작’으로 매도하는 KBS의 정체는 과연 뭐냐.”

―당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

“여야를 떠나 국내외 문제를 총망라해 의견을 교환하고 얘기를 들었다.”

―KBS는 한국 언론의 미국 편향성을 비판하면서 덕소모임을 언급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동아일보는 당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야당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유일한 언론이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유대에도 관심이 컸다. 당시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국익을 위한 정당한 일이었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매국적인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모르고 KBS가 동아일보를 몰아붙이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데서 오는 억지다. 동아일보는 당시 대한민국의 정통신문으로서 민족지의 금도(襟度)를 가지고 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KBS는 역사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

―당시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지했으며 한국의 민주화를 기대했다. 우리가 이만큼 발전한 것도 미국 덕분이 아닌가. 북한은 소련 때문에 망했고….”

―현재의 KBS에 대한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어떻게 국민의 세금이나 다를 바 없는 수신료를 받아서 그렇게 할 수 있나. KBS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때리기만 계속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모르는 것 같다.”

―당시 여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서빙하는 여자 몇 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생파티는커녕 그 여자들은 앉아 있지도 않았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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