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IQ…EQ…NQ…이번엔 VQ를 높여라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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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김정민 이사가 스타일링한 호박떡(위).빨간색이 돋보이는 김보경 이사의 테이블 세팅.
스타일리스트 김정민 이사가 스타일링한 호박떡(위).빨간색이 돋보이는 김보경 이사의 테이블 세팅.
《비주얼 감각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자리 잡고 있다.

꼭 비주얼을 직접 다루는 디자이너나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여러 자료를 보기 좋게 포장해 설득력 있는 보고서로 내야 하는 회사원에서부터 의식주 소비에서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하는 주부에 이르기까지 ‘보는 안목’이 생활의 필수 조건이 된 것.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 얼마전 등장한 공존지수(NQ)에 이어, 이제는 시각적 감각을 측정하는 ‘비주얼지수(VQ·Visual Quotient)’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VQ는 왜 중요하며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VQ를 필요로 하는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멀티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통해 노하우를 들어봤다.》

○ VQ의 힘

삼성패션연구소 이유순 수석연구원은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산업이 마케팅 중심에서 디자인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소비자 안목도 높아져 기업들은 VQ인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VQ가 뛰어난 천재는 한 기업의 생사를 뒤집기도 한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42)는 1994년 파산 위기에 놓인 이 회사에 입사해 패션 디자인을 포함한 ‘보여지는 모든 것’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 결과 구치는 다시 세계 최정상급 브랜드로 우뚝 섰다.

지난해 그가 받은 연봉은 551만유로(약 74억4000만원). 그러나 지난달 그가 구치와의 결별을 선언하자 이 그룹의 최대 주주인 ‘피노-프랭탕르두트’그룹의 주가는 단숨에 4.8% 떨어졌다. VQ 천재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길러지는가. 포드씨처럼 타고난 VQ 천재는 드물다. 하지만 시각적인 감각 자체는 교육을 통해 기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스타일링 큐브 아카데미’의 김보경(왼쪽), 김정민 이사는 “이질적인 색과 소재를 과감하게 매치해 보라”고 조언한다. 이종승기자

○ 원색을 두려워하지 말라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스타일리스트 양성학원 ‘스타일링 큐브 아카데미’를 연 자매 스타일리스트 김정민(37), 보경 이사(36)는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각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뒤 그래픽과 인테리어 분야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들은 영역을 넓혀 현재는 음식과 패션 스타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는 호기심이 아주 강한 편이에요. 두꺼운 그래픽 디자인 책에 작은 사진이 있으면 루페(보석 감정사들이 쓰는 작은 돋보기)까지 가져다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렸어요.”(김정민 이사)

김보경 이사는 일반인들의 비주얼 감각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색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사람들은 보통 선명한 원색류의 의상이나 소품을 구입하는 것을 꺼린다.

“보라색과 오렌지색, 녹색과 밤색이 아주 세련된 조합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도 시간이 걸리죠.” 그는 옷을 입거나 집과 식탁을 꾸밀 때도 보색 대비와 원색의 조화를 이용하면 당장 ‘뭔가 달라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창의력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신작 영화 등장인물의 옷이나 소품을 자세히 보세요.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의 감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죠.”(김정민 이사)

디자인 영재교육원 ‘블루닷’의 구동조 원장(왼쪽), 김병수 부원장이 어린이들과 함께 창의적인 디자인의 안경을 써보고 있다. 이들은 창의력을 기르면 VQ 또한 높아진다고 말한다. 이종승기자

○ 기억력과 상상력을 높여라

3월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초중학생을 위한 디자인 영재교육원 ‘블루닷’을 운영하고 있는 구동조 원장(56)은 “18세 전후로 시각적인 감각의 발달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어른이 되더라도 ‘생각의 전환’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졸부들이 아무리 비싼 물건을 사도 천박해 보이는 것은 관찰력이 부족해 안목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 ‘보는 힘’은 시각적인 자극을 기억하는 데서 출발한다. 거리에서도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옷차림을 기억하려 애쓰면 관찰력과 상상력이 발전한다.

그는 자녀들의 비주얼 감각을 키우기 위해 서울 을지로 골목이나 성남 모란시장 같은 곳을 구석구석 데리고 다녔다. 예를 들어 문고리 가게에 가서는 “우리집 문고리를 바꾼다면 어떤 게 좋을까”라고 물어 상상력과 응용력을 자극하곤 했다. 그의 딸은 현재 패션디자이너로 활동 중이고, 아들은 공연기획을 꿈꾸고 있다.

‘블루닷’ 부원장인 김병수 계원조형예술대 교수(그래픽디자인학)는 이 학원에 들어올 때 치르는 테스트를 비주얼 감각의 평가방법으로 예시했다.

학생이 만든 시계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강아지를 그리라고 해봤습니다. 평범한 애들은 아주 작게 점을 찍으려 애쓰지만 몇몇 아이는 개미가 강아지 목줄을 끌고 간다든지 커다란 개미가 작은 강아지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리죠.”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다면 세상에 널린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을 골라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게 김 부원장의 설명이다.

○ 자연을 카피하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미용실 ‘파크뷰’와 카페 ‘모우’를 운영하는 이상일 원장(48)은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본업. 그러나 미용실과 카페의 인테리어나 플라워, 푸드 등의 디자인도 직접 한다. 그가 가장 많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자연.

“가만히 보면 자연 속에 완벽한 스타일링이 존재해요. 꽃과 구름, 강과 산의 모습, 색상, 질감의 조합이 가장 완벽하다고 할 수 있죠.”

그는 공간 속에 꾸미지 않는 자연을 들이려 노력한다. 여러 색의 꽃잎을 바싹 말려 엘리베이터 바닥에 한가득 깔아놓는다든지 미용실 한가운데 노란 은행나무를 세우는 식이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색의 조합은 무한하다.

비주얼 감각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메모의 힘’. 10월 말 카페의 한쪽을 개조해 파티공간으로 만든 ‘블랙 란제리룸’ 오프닝 파티 때 쓴 메모를 들여다봤다.

‘안내 도우미:블랙 헤어, 마스카라, 절대적 서비스를 표현하는 표정, 손에 힘들어가지 않게 워킹하기. 메인 꽃:섹시함과 포용적인 표현 중요, 야한 기분 느끼게….’ 태도까지 눈에 보이듯 시각적인 메모로 남기는 습관이 가장 고전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이정라 실장이 이미지 작업을 한 '크라제 버거'의 타워점 쇼윈도.

○ ‘사건’을 체험하라

영화 ‘나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포스터 제작, ‘크라제 버거’의 브랜딩 작업, 디자이너 최연옥의 패션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각종 전시회 기획….

디자인회사 ‘랄랄라’ 이정라 실장(34)의 화려한 경력이다. 때로는 키치적인, 때로는 반대로 극도로 모던한 솜씨를 부리는 그는 ‘디자인은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건’들을 접하다보면 시각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

‘사건’이란 오감을 통해 접하는 모든 자극.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칭한다. 해외여행 때면 반드시 사진이 많은 ‘역사책’을 사온다. 그 나라의 문물에 대한 것도 좋고 일종의 백과사전도 좋다. 그가 기자에게 보여준 ‘역사책’은 ‘코르셋: 마돈나부터 원더우먼까지’였다.

“이런 책을 보면 생소한 시각물을 실컷 접할 수 있고 나중에 응용할 수도 있잖아요.”

여행이 어렵다면 인터넷을 이용한다. 그가 즐겨 찾는 사이트는 영화 음악 등 각종 예술 이벤트를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쇼 스튜디오’(www.showstudio.com). 인테리어전문잡지 ‘월 페이퍼’와 프랑스 패션잡지 ‘셀프 서비스’, 일본 멀티미디어 잡지 ‘스튜디오 보이스’에도 기억해둘 만한 좋은 비주얼들이 많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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