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번엔 ‘下野 승부수’인가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52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우리가 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그 말 속에 대통령직 사퇴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5월) “재신임을 받겠다”(10월)는 발언에 이은 ‘하야(下野) 승부수’인 셈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나라당보다 불법자금을 적게 썼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운 정권이 한나라당보다 10% 이하로 썼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가. 예컨대 9.9%가 나오면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불법자금이었다면 당선무효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내세운 기준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청와대와 검찰 간에 뭔가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또한 지우기 어렵다. 설령 검찰이 빈틈없는 수사를 한다 해도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의 발언 자체가 검찰에는 노 캠프의 불법자금 규모를 자신이 제시한 기준 이하로 맞추라는 지침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대통령의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 대신 수사의 공정성을 보다 믿을 수 있는 특별검사가 수사를 맡아야 한다. 노 대통령도 “내 자신과 관련된 수사에 대해 국회가 특검을 도입하면 수용하겠다”고 한 만큼 대선자금 특검은 이제 불가피하다. 특검 결과 노 캠프의 불법자금이 대통령이 제시한 기준을 넘었다면 약속대로 대통령직을 물러나야 한다.

무엇보다 특검을 서둘러야 한다. 노 대통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이후’라고 했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다간 정략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국정의 불안정성은 심화되고 국가의 대외신인도는 추락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이후 나라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측근비리 특검 문제로 싸우다가 국회가 마비됐고,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국정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현안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할 국가 최고지도자가 자꾸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헌법에 따라 국민이 부여한 5년 임기를 그처럼 경솔하게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거취는 국가 안위와도 직결된다. 국민은 남은 임기 4년 동안 또 몇 번씩이나 대통령직을 걸 일이 생길지 불안하다. 다시는 대통령 자리가 ‘승부수’가 되는 일이 없도록 이번엔 확실한 매듭을 지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