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유방암 재발률 낮춘 새 치료법 각광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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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세계적으로 100만명 이상의 유방암 환자가 생겨나며 30만명이 사망한다. 국내의 경우 유방암 환자는 2002년 기준으로 8000여명에 육박하며 위암과 함께 가장 많은 여성 암으로 손꼽힌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80개국 5000∼6000명의 의료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의 샌안토니오유방암국제심포지엄(SABCS)이 열렸다.

‘유방암의 연구와 치료’를 주제로 한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최신 논문은 대략 700여편. 특히 조기 유방암의 치료와 재발 방지에 대한 논문이 많았다. 또 유전자를 활용한 차세대 치료법도 논의됐다.

▽유방암 어떻게 치료하나=1기와 2기, 3기 초기 등 조기 유방암의 경우 먼저 암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실시한다. 이어 재발을 막기 위해 화학요법과 호르몬요법을 보조적으로 시행한다.

화학요법은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항암제를 혼합해 사용한다. ‘아드리아마이신’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를 투여하는 AC요법이나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메소트렉세이트’ ‘5-플루오루라실’을 투여하는 ‘CMF 요법', ‘5-플루오루라실’과 ‘독소루비신’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등을 투여하는 ‘FAC 요법’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호르몬요법은 암 조직에서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환자에게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50∼60% 정도가 호르몬 수용체 양성에 해당한다. 이들의 경우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이 호르몬수용체와 결합해 암세포를 증식시키거나 암세포에 영양분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항호르몬 치료를 해야 한다.

▽조기유방암 재발률 낮췄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재발률을 크게 낮춘 새로운 화학요법과 호르몬요법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국제유방암연구그룹(BCIRG)은 97∼99년 4년 7개월간 20개국 1491명의 폐경 전후 조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화학요법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BCIRG는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FAC 요법을, 다른 그룹에는 새로운 요법인 ‘TAC 요법’을 적용했다. TAC 요법은 FAC 요법에 사용하는 약물 중 ‘5-플루오루라실’을 빼고 ‘탁소텔(성분명 도세탁셀)’을 추가한 것.

연구팀이 55개월간 환자들을 추적한 결과 FAC 그룹과 비교했을 때 TAC 그룹의 재발률은 28%, 사망률은 30%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 요법은 내년 중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거쳐 환자들에게 시행될 전망이다.

호르몬요법에서도 5년 후 재발률을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낮춘 결과가 발표됐다. 캐나다 국립암연구소(NCI) 임상연구그룹(CCTG)은 폐경 여성을 대상으로 2년 4개월간 추적한 결과 페마라(성분명 레트로졸) 보조요법을 사용한 그룹이 가짜약을 사용한 그룹에 비해 43% 재발률이 낮은 것을 확인했다. 또 반대쪽 유방에서 유방암이 발생할 확률도 46% 적었다. 이 요법 역시 내년 중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재발 막는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유전자 프로필(Gene Profile)’ 분석이란 차세대 진단법 논문이 쏟아졌다.

이들 논문을 요약하면 미래에는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 수천 종을 하나의 칩에 넣어 환자의 피 한 방울로 유방암 유전자 지도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프로필을 분석하는 수준까지 이뤄진다는 것. 이렇게 되면 유방암의 맞춤 치료도 가능해진다.

현재는 어떤가.수술 뒤 재발률은 10∼20%에 불과하지만 누가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머지 80∼90%에도 항암제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재발 가능성이 낮은 환자라도 모두 항암제를 투여한다. 누가 재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사람마다 효과가 큰 약이 있을 수 있지만 일률적으로 같은 치료법을 적용한다.

이제 미래를 한번 맛보자. 유전자 프로필을 분석하면 재발 가능성을 쉽게 알 수 있다. 가능성이 낮다면? 항암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가능성이 있다면 역시 유전자 프로필을 분석해 어떤 약물이 치료효과가 높은지를 알아낸다. 다른 약은 필요 없이 그 약만 투입하면 된다. 또 어떤 돌연변이가 암을 유발하는지도 알 수 있다. 현재 이 돌연변이만 골라 죽이는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샌안토니오=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왜 재발률인가 ▼

유방암은 수술을 받는다 해도 50% 정도가 재발할 만큼 다른 암에 비해 재발률이 높다. 보통 암은 5년이 지나도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한 것으로 보지만 유방암에 완치란 개념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의학자들의 연구가 재발률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환자-의사 모두 삶의 질 중시로 치료법 발달" ▼

이번 유방암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강연이 있었다.

유럽종양학연구소의 움베르토 베로네시 박사(사진)가 ‘미래에 대한 조망(a look to a future)’이란 주제로 한 강연이다.

베로네시 박사는 “유방암과 관련된 의학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은 의사와 환자 모두가 삶의 질의 중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며 ‘삶의 질’에 관한 인식이 유방암의 예방과 진단, 치료 등 전 과정에서 패러다임의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방식은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면 환자들이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모두 해 보는 ‘최대 치료법(maximum tolerated treatment)’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치료 경향은 절개 부위는 줄이고 약물은 적게 투입하는, 그러면서 효과를 내는 ‘최소 치료법(minimum effective treatment)’으로 바뀌고 있다.

유방이 없다는 사실이 여성에게는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유방암에 걸렸다면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유방을 들어냈다. 심지어 갈비뼈를 제외하고 주변 장기 모두를 제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술은 암세포 주변 일부로 제한돼 이뤄진다.

방사선 요법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암이나 종양이 발견된 부위뿐 아니라 주변이 모두 치료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암세포만 겨냥한 방사선 치료가 이뤄진다. 약물의 효과를 내기 위해 투입량을 늘리는 것도 옛날 얘기가 됐다.

“유방암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암 덩어리를 몸에 지녔다 해도 두려움 없이 고품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며 우리는 그렇게 가고 있다.”

샌안토니오=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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