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사태 당시 재경장관 "난 모른다"

  • 입력 2003년 12월 4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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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카드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신용카드업계 부실은 현재 한국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가장 강한 ‘뇌관’으로 꼽힌다. 이처럼 카드업계가 곪을 대로 곪은 상황까지 온 것은 정부와 카드업계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용카드 정책 누가 간여 했나=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적극 추진한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자체를 잘못된 정책이라고 매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늘날의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독소(毒素)’가 적지 않게 포함됐다는 점이다.

특히 1999년 5월에는 카드정책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가장 잘못됐다고 보고 있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70만원) 폐지정책이 나왔다.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강봉균(康奉均·열린우리당) 현 의원이었다.

정부의 ‘묵인’ 또는 ‘방조’를 배경으로 LG카드와 삼성카드 등 전업계 카드사들은 무리한 마케팅에 나섰고 2000년 신용카드 시장은 급격히 팽창했다. 이 과정에서 ‘길거리 회원 모집’이나 소득이 없는 사람에 대한 카드발급이 잇따랐다. 당시 LG카드 이헌출(李憲出) 사장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같은 우량 고객은 수수료가 비싼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는다”면서 “소비욕구는 크지만 수입이 적은 20, 30대를 겨냥해야 한다”고 성공비결을 ‘자랑’하기도 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90년대 중반 미국이 겪은 신용카드 사태를 떠올리면서 이미 2000년부터 무분별한 카드발급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신용카드 규제를 주장했지만 경기회복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던 정부는 신용카드 규제 강화에 소극적이었다. 2000년 말 신용불량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서자 재정경제부는 ‘길거리 회원모집’ 규제방안 검토를 지시했고 이근영(李瑾榮)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조치를 만들어 규제개혁위원회에 넘겼다.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진념(陳稔)씨였다.

하지만 강철규(姜哲圭) 현 공정거래위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던 규개위는 길거리 모집에 대한 규제를 반 시장적 규제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2002년 3월이 돼서야 길거리 모집이 금지되고 미성년자에 대한 카드발급이 제한됐다.

▽당시 당국자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그러나 당시 고위당국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강봉균 의원은 “DJ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한 가장 큰 이유는 세원노출 등을 통해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내수 진작은 부수적 이유였다”면서 “2000년 이후 과도한 경쟁이 이뤄졌을 때 감독기관이 건전성 규제를 생각했어야 했으며 전체 책임의 70∼80%는 카드사에 있다”고 말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신용카드 부실과 관련해 내 이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억울하다”면서 “카드남발에 문제가 있어 금융감독원에 조치를 마련하도록 지시했으나 규개위에서 1년 이상 지체됐다”고 말했다.

금감위의 이두형(李斗珩) 공보관도 “금감원은 2000년부터 카드사에 지속적으로 구두 경고를 했지만 이 정책이 먹혀들지 않아 2001년 초 카드사의 길거리 모집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금융감독규정을 만들었다”면서 “그러나 규개위가 반대하면서 1년을 끄는 동안 길거리 모집이 크게 늘었다”고 규개위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당시 카드 가두 모집 금지조치를 무효화한 것은 규개위 1분과에서 결정했으며 위원장이 주재하는 전체 회의에서는 논의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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