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과로사 급증

  • 입력 2003년 12월 4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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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의 38선'에서 '죽음의 38선'으로….

퇴출 공포에 시달리는 30대 직장인들이 과다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는 매년 10%씩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760명에 달했다. 특히 '38선'에 해당하는 35~39세 직장인의 경우 이 질환의 발병 환자 71명 중 70명이 목숨을 잃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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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 당사자가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연 매출이 100억대에 달하는 IT 기업에서 회계관리 상무를 맡고 있던 회사원 A씨(39)는 최근 후배 직원들에게 이런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감원 대상자를 선별하던 위치에 있던 A씨는 회사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이에 대한 책임으로 올해 자신이 감원 대상자에 포함된 것. 두 자녀를 키우는 가장으로서 A씨는 전력으로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직원들 사이의 눈치 경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또 몇 달 동안 매일같이 야근을 되풀이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아무런 지병도 없이 건강했던 A씨는 5월 수면 도중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원에서 진단한 사망 원인은 과로에 의한 심근경색.

대기업에 근무하던 B씨(38)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최근 두 차례나 승진시험에 탈락해 압박감은 더욱 심해졌다. 휴일도 반납한 채 근무와 승진 시험 준비에 매달리던 B씨도 4월 '자발성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뇌심혈관계 질환은 직무상 스트레스를 받거나 갑자기 업무가 많이 늘어난 사람의 뇌심혈관계에서 발생하는 병. 단순한 과로 뿐 아니라 퇴출 공포, 무기력감, 한직 발령과 직장 내 차별 대우로 인한 정신적 충격 등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한 취업전문업체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58%가 "자신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최근 유행어로 떠오른 '38선' 연령대의 사망률이 두드러지게 높아졌다는 것.

산업안전공단 박정선(朴正鮮) 수석연구원은 "30대는 병을 갖고 있다가 과로와 스트레스 등 계기가 생겨 돌연사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연령대도 급속히 낮아지는 추세다.

인제대 신경정신과 우종민(禹鍾敏) 교수는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는 20대 직장인의 숫자가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과로사에 비해 이에 대한 국가적 관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과로사로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의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이 판단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

또 중소기업의 경우 과로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빙 자료를 구비하지 않을 때가 많아 산재 신청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 때문에 환자나 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부 산재보험과 관계자는 "과로의 여부는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본인이 입증할 수밖에 없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개인 질병도 점차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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