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은 이제 어느 쪽도 믿지 못한다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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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자금 비리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대선 당시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당 재정위원장) 사무실에 SK비자금 100억원 외에도 거액의 현금을 쌓아 뒀다는 당 재정국장 이재현씨의 검찰 진술은 충격적이다. 구속 중인 이씨는 이 돈을 라면박스 등에 담아 가로 3m, 세로 5m, 높이 1.2m의 공간에 4단으로 쌓아 뒀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돈이 다른 기업들로부터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을 얼마나 거둬들였기에 사무실을 현금 박스로 가득 채우다시피 했단 말인가. 이회창 전 총재의 대(對)국민 사과는 한낱 ‘정치 쇼’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이 전 총재가 사과하면서도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 혹시 이런 사정 때문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의 사과에 이어 의원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갖고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기업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숨겨 놓았던 돈 다발’에 이르러선 그런 다짐조차 무색하다. ‘우리는 털어놓았으니까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백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런 외침도 공허하다.

노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씨가 SK비자금 외에 다른 돈을 받은 단서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또한 우리를 절망케 한다. SK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이 궁금해 한 것은 ‘과연 최씨를 보고 돈을 줬겠느냐’였다. 이번에도 상대방이 최씨만을 보고 줬을까.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언제까지 남의 일인 양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가 확대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의 대선자금 모금 의혹도 마찬가지다. 입을 열 때마다 모금액이 달라지니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뿐이다. 검찰은 여야를 가리지 말고 대선자금 비리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국민은 이제 어느 쪽 말도 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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