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장호/'주5일' 국회가 해결해야

  • 입력 2003년 7월 3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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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 입법이 지연되면서 부작용이 심상치 않다. 금속산업노조가 휴가일수 등의 조정이 전혀 없는 주5일 근무제를 올해 단체협약에서 관철함에 따라 기업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 법안 표류 현대車등 갈등 장기화 ▼

긴급조정권 검토까지 불러온 현대자동차 노사교섭의 장기 파행도 주5일제 문제가 핵심 쟁점의 하나다. 이러한 정치적 쟁점이 마치 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인 자동차산업 전체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이미 1조원을 초과하는 생산 차질이 발생했으며, 대외신인도 등의 간접 손실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5일제 입법의 지연은 이런 소모적 노사분쟁의 요인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노조 유무, 또는 강성 정도에 따라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를 확대시켜 노동시장의 구조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로시간 관련 제도의 합리화를 수반하는 주5일제의 도입은 이제 질적인 성숙이 요구되는 우리 경제발전 단계상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또 주5일제 논의가 본격화된 수년 전부터 여러 사업장에서는 편법적인 주5일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주5일제는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정책과제다. 그러므로 정부와 정치권이 노사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수렴 조정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및 정치권의 대처는 실망스러운 면이 더 많았다. 지난 외환위기 때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제기된 후 2000년부터 노사정위원회에서 본격적인 논의와 합의 도출이 시도되었고, 그해 10월 노사가 기본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합의가 가능했던 데는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 휴가제도의 합리화, 탄력근로의 확대 등의 핵심 쟁점을 놓고 노사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후 1년 이상 집중적인 협의 과정이 있었지만, 세부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노사간의 대타협 또는 완전한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때부터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 되었다. 공은 이미 정부와 정치권에 넘겨진 셈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노동부는 공익안을 토대로 한 정부입법안을 지난해 정기국회에 제출했지만 10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노사합의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가 입법화에 소극적 자세를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는 국회가 본분을 저버리고 태업(怠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노사관계 관련 규칙의 제정은 국가가 해야 하는 기본 임무가 아니던가.

올해 임단협이 진행되면서 사태가 심각해지자 재계는 정부안으로라도 빨리 입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모처럼 국회와 정치권도 8월 중에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노사가 협상을 재개해 최종 합의를 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의 협상은 일단 재개되겠지만,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노사협상의 시한을 정하고,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이번 국회에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다. 이것이 주5일제 문제에 대해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기회주의적 행태를 불식하는 길이다.

주5일제 문제에 대한 공론화 과정은 이미 충분하게 거쳤다. 또한 현재 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은 공익적 차원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국회의 법안 심의가 원점에서 출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사협상 時限 정해 매듭지어야 ▼

주5일제 도입은 엄밀히 말해 법과 원칙을 새로 짜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문제를 두고 이익단체인 노와 사의 합의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국민경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내용의 법안을 조속하게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김장호 숙명여대 교수·경제학·한국노동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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