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도 가족의 전통적인 역할과 기능은 이미 거의 사라졌다. 노인부양 기능은 축소됐고 자녀교육은 학교와 학원에 넘겨졌다. 이제 남아 있는 기능은 가족간에 혈연을 나누는 정도다. 반면에 가족 형태는 무척 다양해졌다. 이혼 증가에 따라 재혼가족과 편부모가족, 독신자가족이 늘어났고 자녀유학 등으로 떨어져 사는 분거가족, 출산을 기피하는 무자녀가족도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가정주부의 자녀동반 자살은 이처럼 가정의 기능이 축소되고 해체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행으로 볼 수 있다. 이 주부처럼 혼자 자녀 양육을 떠맡은 여성의 빈곤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큰 사회적 이슈다.
▷더욱 실질적인 문제는 가족간 대화의 단절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18분이며 그나마 40분은 식사시간이라고 한다. 함께 있는 시간도 짧지만 그 시간에도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스콜닉은 “대도시 교외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거의 모두 깨진 가정”이라고 개탄했다. 아버지는 한밤중에 손님처럼 집에 찾아오고 어머니는 맞벌이 등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화 단절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이다.
▷‘강남에서는 애견이 없으면 가족이 해체되고 강북에선 TV가 없으면 가족이 해체된다’는 유머가 있다. 이른바 생활패턴의 차이 때문이라는데 유머인 만큼 정색하고 들을 얘기는 아니다. 아무튼 애견과 TV 시청을 통해 비로소 가족이 일체감을 느낄 정도라면 우리의 가족은 안으로 멍들어 있다는 얘기다.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역시 위기라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것이다. 세상의 무게에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이 땅의 부모들은 애처롭게도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별로 없지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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