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극 찍을 때 말은 연기자보다 상전”

  • 입력 2003년 7월 2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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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무인시대’의 전투장면. 까마귀를 유인하기 위해 닭의 사체를 사용하는 등의 ‘원시적인’ 촬영수법이 많이 사용된다. 사진제공 KBS
KBS1 ‘무인시대’의 전투장면. 까마귀를 유인하기 위해 닭의 사체를 사용하는 등의 ‘원시적인’ 촬영수법이 많이 사용된다. 사진제공 KBS
23일 경북 문경시 KBS1 대하사극 ‘무인시대’(토일 밤 10·10) 야외 촬영장.

이날은 이의방(서인석)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출정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말에 오른 서인석은 황색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리다가 말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떨어졌다. 다행히 서인석은 부상이 없어 숨을 돌린 뒤 다시 촬영에 임했다.

서인석의 말이 몸부림친 이유는 사람과 장비에 둘러싸여 불안해졌기 때문. 이때는 진정제도 듣지 않는다. 윤창범 PD는 “이런 경우는 무리지어 다니는 말의 본성을 이용해야 한다”며 다른 말을 한 마리 더 데려오게 했다. 동료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말은 눈에 띄게 안정됐다.

이처럼 사극의 전투 장면을 찍는데는 제작진의 기발한 묘수가 이어진다. 특히 제작진이 터득하고 있는 노하우 중에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수법도 많다.

말에 탄 장군의 뒤에서 많은 군졸이 함성을 지르는 장면도 입만 벙긋하게 해서 찍고 함성은 따로 녹음해 편집 과정에서 합친다. 소리에 예민한 말에 대한 배려다.

전투가 휩쓸고 간 뒤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까마귀도 ‘모셔오기’가 쉽지 않다. 윤 PD는 “까마귀를 쉽게 볼 수 없어 늘 애를 먹는다”고 말한다.

제작진은 까마귀를 유인하기 위해 깃털을 뽑지 않은 닭의 사체를 이용한다. 촬영 전날 닭의 내장을 늘어놓으면 다음날 공중에서 맴돌거나 땅에 내려오는 까마귀를 찍을 수 있다. 그래도 서너 마리 정도여서 편집을 통해 여러 마리처럼 보이게 한다.

전투에서 흘리는 ‘피’는 물엿과 초콜릿, 그리고 붉은 색소로 만들어 피 같은 점성과 색깔을 낸다. 비중있는 배우는 ‘피’가 든 작은 풍선을 입속에 숨기며 대사를 말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순간에 풍선을 깨물어 터뜨린다. 그러나 보조 출연자들은 숟가락으로 ‘피’를 입 속에 떠주고 말 뿐이다.

윤 PD는 “전투 장면 들어가기 전에 풍선을 받는 배우는 ‘내가 떴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며 웃었다.

문경=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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