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송금 2차공판, 박지원-이기호씨 ‘현대대출’ 떠 넘기기

  • 입력 2003년 7월 2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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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박지원(朴智元·구속)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관련자 8명에 대한 2차 공판이 21일 오후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김상균·金庠均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현대측에 정부가 내기로 한 1억달러를 대신 내달라고 요청했는지 여부 △산업은행에 현대에 대한 부당대출을 지시했는지 여부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 후 박 전 장관의 신분 등에 대해 진술이 엇갈렸다.

박 전 장관은 변호인 신문에서 “현대측에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1억달러를 대신 지급해 달라고 요청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장관은 또 “국가정보원 별관에서 이기호(李起浩·구속)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과 현대 지원을 논의한 것은 사실이나 부당대출 등 실정법 위반 사항을 지시하거나 부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정상회담 예비접촉 당시 북측이 현금 지원을 요청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진술을 거부했다.

이 전 경제수석은 “2000년 4월 말 임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별관에서 정부가 북한에 1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알려줬다”며 특검 진술을 번복했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은 “산업은행에서 400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을 몰랐으며 내 지시에 따라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돈을 모아 송금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정상회담을 앞두고 1억달러를 준비하기가 여의치 않으니 현대가 맡아달라고 요구했고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이를 수용했다”고 증언했다.

임 전 국정원장은 “현대가 2억달러를 급히 송금해야 하는데 환전 편의를 봐달라고 했으며 대북경협 대가의 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규백(崔奎伯)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송금 당시 위법 사실을 모른 채 지시 이행만 생각했으며 알았다 해도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박 전 장관의 변호인인 김주원(金周元) 변호사는 이날 재판부에 “특검이 제출한 증거를 인정하며,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도 없다”며 박 전 장관에 대한 보석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박 전 장관측은 또 구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신청했다고 21일 밝혔다. 박 전 장관측은 신청서에서 “외국환거래법상 외국이나 국내 비거주자에게 돈을 보낼 때 재정경제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헌법 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이므로 북한은 외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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