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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김운용씨 당선-파문을 통해 본 IOC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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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김운용씨 당선-파문을 통해 본 IOC의 세계

입력 2003-07-17 17:30수정 2009-10-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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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위원들의 '뇌물 추문' 이 물의를 빚고 있던 1999년 1월 24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이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에서 관련 위원들의 제명 여부를 결정할 집행이사회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AP

《1894년 6월 23일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현 파리 4대학)에서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을 비롯하여 유럽과 북미 등 9개국에서 모인 79명의 대표가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또 1회 대회 개최국인 그리스의 교육학자 데메트리우스 비켈라스를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태동이었다. 쿠베르탱 남작은 “우정과 연대 그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어떤 차별도 없는 스포츠로 세계 젊은이들을 가르쳐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는 ‘올림픽 운동’의 정신을 밝혔다.

그러나 이날 소르본대에 모인 사람들은 100여년 뒤 자신들의 조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닫힌 패밀리’

1999년 6월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제109차 IOC 총회는 IOC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공개됐다. 비록 회의장 밖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과 호텔 내 폐쇄회로TV를 통해서였지만 말이다.

이전까지 IOC 총회는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사진기자들도 총회 시작 15분 전까지만 회의장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고 총회 마지막 날이 돼야 IOC 위원장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도 총회 회의록조차 열람하지 못했고 총회에서 논의될 안건도 사전에 알 수 없었다. 총회가 끝나면 회의결과만 자료로 받는 수준이었다.

또 IOC는 조직의 예산과 집행 내용도 공개할 의무가 없었고 감사를 받지도 않았다. 조직에 감사제도가 아예 없다. IOC라는 조직 자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뿐이었다.

지난해 미국 LA타임스는 이런 IOC를 ‘신사 클럽(gentleman's club)’이라고 표현했다.

IOC의 이런 비공개성과 폐쇄성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1980∼2001년 재임) 취임 이전과 이후가 약간 다르다.

80년 이전까지 IOC는 올림픽 정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교 모임 성격이 짙었다.

60년대까지 스위스 로잔의 한 시계제조업자 가게 뒤편 조그만 사무실에서 리디 잔치라는 여비서 혼자 행정업무를 맡아했다. 5대 위원장이던 미국의 사업가 에브리 브런디지(52∼72년)가 내는 7만5000달러(약 9000만원)가 IOC 1년 예산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72년 서독 뮌헨올림픽에서 미국 내 TV중계권료 600만달러(약 72억원)를 받은 것이 IOC 사상 첫 흑자였다.

따라서 IOC 위원들은 자기 돈으로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럽의 귀족이나 왕족, 또는 운동선수 출신 사업가가 대부분이었다. IOC 위원 자격도 위원들간의 호선으로 결정되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러나 80년 소련 모스크바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이 선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이 약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의 적자를 내자 78년까지 84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신청한 도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유일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몬트리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성황 봉송 권리를 주자 한 사람마다 3000달러(360만원)에 팔 정도로 마케팅에 열중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직위는 총 2억2000만달러(약 2600억원)의 순익을 거뒀고 IOC는 TV중계권료로만 2억8600만달러(약 34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각국 도시들은 올림픽 개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연쇄적으로 개최지를 결정하는 IOC 위원들에게도 로비가 쇄도했다. 92년 개최 후보도시였던 파리, 브리즈번, 베오그라드, 버밍엄, 암스테르담 등의 유치위원회는 유치 캠페인에 총 1억4000만달러(약 1480억원)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변화의 딜레마

99년 서울에서 109차 IOC 총회가 열렸다. IOC 위원들이 묵는 한 호텔은 이들을 VIP 중 가장 높은 수준인 ‘스페셜 어텐션(특별 배려)’으로 대접했다. 스페셜 어텐션은 국가수반과 같은 정도의 서비스. 호텔 로비에는 레드 카펫이 깔렸고 전담 서비스 요원이 지정됐다. 정부에서 위원별로 차를 지급했다.

IOC 위원은 모든 국가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IOC 총회를 여는 개최국 수반과 단체로 접견할 수 있다. 위원들이 묵는 숙소에는 IOC 깃발은 물론이고 해당 위원 모국의 국기도 게양된다.

이런 특별대우는 올림픽 헌장에 규정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20년대부터 올림픽 개최 도시는 IOC 위원들에게 부부 동반으로 배, 기차 등의 1등석을 제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IOC 자체의 수입이 늘어난 뒤에는 IOC에서 항공료를 지급하고, 숙박 및 체재비는 위원들이 일단 낸 뒤 IOC에서 나중에 환급해 주었다.

그러나 2001년 제8대 IOC 위원장으로 선출된 벨기에의 자크 로게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맞춰 열린 IOC 총회 때 호텔이 아닌 올림픽 선수촌에서 숙식을 했다. 변화의 표시였다. 계기는 98년 스위스의 IOC 위원 마크 호들러가 폭로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유치 비리’.

호들러 위원에 따르면 솔트레이크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2002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13명의 IOC 위원에게 120만달러(약 14억4000만원)에 이르는 현금과 선물, 자녀 교육비, 취업, 건강진단 등을 제공했다. 이 사건으로 IOC 위원 중 6명이 제명됐고 4명은 사퇴, 3명에게는 엄중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솔트레이크 파문’으로 IOC는 창설 105년만인 99년 ‘자기 들여다보기’에 들어갔다.

윤리위원회가 생겼고 200달러(약 24만원)를 넘는 선물은 받지 못하도록 했다. 올림픽 개최 후보도시에 IOC 위원들이 방문하는 것도 금지했다. 위원들의 정년도 80세에서 70세로 낮췄고 임기도 종신에서 8년으로 줄였으며 재선까지만 가능하도록 했다. 위원장은 8년 임기에 4년 중임까지만 가능하다.

그전까지 받아주지 않던 현역 선수들과 국제경기연맹(IF) 등 올림픽 관련 국제단체 및 NOC의 장들에게도 IOC 위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IOC 위원 선정위원회를 만들어 사전에 후보들에 대한 평가 작업을 하도록 했고 IOC의 수입과 지출내용을 공개하기로 했다.

반발하는 위원들도 있다. 이들은 “개최 후보 도시들이 표를 얻기 위해 뇌물을 제공하는 것이 문제”라거나 “행동에 간섭을 받는 것은 모욕적”이라고 항변한다.

IOC는 98년 현재 2억3700만달러(약 2800억원)의 현금과 예금고, 신탁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2012년까지 미 NBC TV에 올림픽 전 경기 중계권을 주는 대가로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 계약을 체결했다.

IOC의 수익은 올림픽 개최국 조직위원회(OCOG)와 NOC, 국제경기연맹 등에 배분되고 IOC는 약 8%를 갖게 된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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