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性추행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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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성(性)희롱 내지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념은 희박한 편이었다. 직장 상사가 부하 여직원에게 차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당연시됐고 ‘진한’ 농담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주는 윤활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외국에 이민 간 노인이 “고놈 참 예쁘게 생겼다”고 하면서 서양 어린이의 ‘고추’를 만졌다가 송사에 휘말렸다는 일화도 그 시절 얘기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성적 연상을 일으키는 남성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당장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차 심부름도 옛날 얘기다. 몇 달 전 자살한 충남 예산군 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비극은 여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시킨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97%는 여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고된 사례일 뿐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많을 것이라는 게 한국성폭력상담소 권주희씨의 말이다. 남성 피해자는 자존심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는 특징이 있어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관은 2001년 ‘군대 내 성폭력’을 주제로 사이버토론회를 열었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쉬쉬해 오는 사이에 이 문제가 안으로 계속 곪아 왔다는 얘기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동성간, 혹은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희롱도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일반의 인식은 법조문에도 못 미치고 있는 셈이다.

▷요즘 군대 내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을 걱정시키고 있다. 며칠 전 휴가 나온 사병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더니 이번에는 당번병을 상습 성추행한 대대장이 구속됐다. ‘옛날 군대’에선 고참이 잘 생긴 신병의 자리를 내무반 침상 자신의 옆으로 정해 주고 ‘장난’을 치는 일이 없지 않았다지만 아직도 그런 악습이 남아 있다니 개탄스럽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생명으로 삼는 군대문화가 왜곡되면서 이 같은 범법행위의 온상이 되는 측면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개병제인 우리나라에서 군대 내 성추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군대에 가기 싫은 젊은이들이 문신까지 하는 마당에 이런 일이 있으면 병역기피 풍조를 더욱 부추길 우려가 있다. 군 사기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육군은 뒤늦게 대책반을 구성한다, 재발방지 대책을 세운다 법석이지만 정확한 실태조사가 먼저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방부 통계자료가 전무하다는 점은 군 당국이 그동안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말해 주는 증거다. 음지에서 성장하는 나쁜 세균은 햇볕을 쬐어 줘야 없앨 수 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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