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공무원 국선도 지원장으로 변신

  • 입력 2003년 7월 13일 15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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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광교산 골짜기에 자리 잡은 새하얀 목조 주택. 산등성이가 눈앞으로 펼쳐진 잔디 마당에는 알록달록 야생화가 피었다. 뒷마당에는 사슴 7마리와 약초 텃밭이 보인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명상에 잠긴다….

은퇴 이후의 노후 생활이 이럴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이 전원생활은 억대 갑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평범한 퇴직 공무원이 가꿔낸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서울시 서초구 공무원이었던 이채규(李埰圭·61)씨는 98년 28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 2001년 국선도 수지지원의 지원장으로 '변신'했다.

2층 건물에 1층이 수련장, 2층이 살림집인 이 전원주택은 이씨가 퇴직금 등을 모아 땅을 사고 직접 설계한 것. 도심 근교에 자리 잡은 전원 도장으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좋은 물과 공기,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생활에 만족합니다. 국선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는 것도 기쁜 일이지요. 스트레칭과 호흡 위주의 국선도는 종교와는 상관없는 일종의 생활선도 체육이에요."

새하얀 도복을 갖춰 입은 이씨는 오랜 기간 도를 닦은 선인(仙人)의 인상을 풍겼다. 실제 그가 국선도 수련을 해온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89년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을 접한 뒤 심한 우울증에 빠졌어요. 3년간의 정신과 치료도 소용없이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운동을 시작했죠. 6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남들에게 이를 전하고 싶어지더군요."

이씨는 이후 새벽마다 국선도 수련을 계속했고 97년 사범 자격을 따냈다. 서초구청 생활체육과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국선도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씨에게 국선도를 배우는 회원은 월 50여명 정도. 지친 심신을 다스리기 위해 죽전, 수원 등 먼 곳에서 찾아오는 전문직종 종사자들도 많다고 이씨는 말했다. 오후반이나 주말 반은 수련 후 마당에서 함께 작은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직접 가꾼 매실로 담근 매실주는 이 집의 자랑.

그는 1인당 월 7만원의 회비를 받는 것만으로 노후 생활은 넉넉하다며 웃었다.

"편한 아파트가 좋다며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던 아내도 몇 년 전에 국선도 사범이 됐어요. 이제는 반대로 서울로 못 돌아가겠다고 하네요. 허허."

마당에서 집채만 한 셰퍼드를 쓰다듬던 이씨는 "강원도 산골짝에 심신수련을 위한 일종의 헬스케어(health-care) 센터를 만들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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