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연구 권위자 김세윤목사 "한국교회 희생정신 필요"

  • 입력 2003년 7월 4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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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자기 희생으로 하나되는 것, 이것이 신약성경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교회는 겸손부터 배워야 합니다.”

최근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 신학’ 창간 14주년 기념 강연을 위해 내한한 김세윤 목사(57·미국 풀러신학대학원 교수)는 그의 강연 소재인 빌립보서의 주제가 ‘겸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목사는 사도 바울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신약학자. 본보가 4월 실시한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분야 최고’라는 설문조사에서 국내 목회자들에게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인물’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바 있다.

1976년부터 길렀다는 턱수염이 인상적인 김세윤 목사는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 한국 목사들을 위한 커리큘럼도 마련했다.-사진제공 두란노서원

빌립보서는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이 교회 내분과 당국의 탄압에 시달리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것.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안팎의 문제, 특히 교회 내부의 갈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겸손과 자기 희생으로 하나됨으로 나아가라고 주문합니다. 당시 헬라 문명에서 겸손은 노예의 윤리였습니다. 이 같은 밑바닥의 윤리를 받아들이라는 바울의 말씀은 앞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힌 것입니다. 현재 교파 분열과 교단의 험악한 정치로 상처받은 한국교회가 꼭 한번 되짚어봐야 할 말씀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빌립보서가 고린도후서와 함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구절이 많은 것으로 꼽았다.

“4장을 보면 바울이 성도들에게 ‘참됨 선함 아름다움 칭찬 등 고상한 가치로 마음을 채워 평안을 얻으라’고 당부합니다. 언제 사형당할지 모르는 그가 두려움과 원한을 버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개역성경의 빌립보서 번역이 원전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다가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성경 번역은 자꾸 새롭게 고쳐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1950년대 번역한 개역성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익숙한 것을 바꾸는 것을 싫어하고 조금만 다른 표현과 용어가 나와도 이단이 아닌가 의심하는’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경향이 낳은 잘못입니다.”

그는 성경 해석에서 성서무오류설이나 성경의 뜻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씌어진 성경 66권을 역사적 맥락에서 보는 ‘역사비판적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

“1990년대 초 유행했던 종말론이 이런 오류의 대표적 현상입니다. 성경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종말에 관한 얘기를 조각조각 꿰맞춰 ‘종말이 온다’는 식으로 선동한 것은 성경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해서 생긴 희극입니다.”

그는 유럽에서 역사비판적 방식을 잘못 사용해 성경을 통째로 해체해버린 잘못을 언급하면서도 ‘역사비판적 방식’ 자체를 버리면 교조주의적 경향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흔히 말하는 한국 교회의 미성숙이 바로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해 나온 결과라는 것.

“성숙하지 못한 교회와 교인은 결국 개인적 구원을 바라는 데 그칠 수밖에 없고 사회적 책무을 떠맡지 못합니다. 한국의 개항 초기 기독교는 여성의 해방, 계급 철폐 등 많은 역할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독교가 남북통일 노사갈등 등 사회적 이슈 해결이나 인권의 발전과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기독교 윤리가 고작 술 담배 안하고 제사 안 지내는 식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적 가치를 공동체 안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이 한국교회의 당면 과제일 것입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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