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잘 팔리는 '한국미술'엔 이유가 있다

  • 입력 2003년 7월 1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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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은 투철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한다. 사진은 철사조각들을 한가닥 씩 용접해 나뭇잎, 꽃잎, 항아리 등의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 정광호씨 작품. 섬세한 작업으로 철이라는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것으로 평가돼 해외 아트페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제공 갤러리 현대
외국인들은 투철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한다. 사진은 철사조각들을 한가닥 씩 용접해 나뭇잎, 꽃잎, 항아리 등의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 정광호씨 작품. 섬세한 작업으로 철이라는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것으로 평가돼 해외 아트페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제공 갤러리 현대
《모든 시장(市場)이 그렇듯이 미술품 시장도 역동적이다. 게다가 미술이라는 정(靜)적인 문화 상품이 가장 상업적인 공간에서 사고팔리는 동적인 현장은 예술과 자본의 절묘한 만남으로도 느껴진다. 특히 외국의 유명 미술품 시장에 가 보면 미술 인구의 대중화라는 말이 실감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전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단지 갖고 싶어서’ 구매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 인구가 소수인 탓에 작품구매조차도 인맥과 안면이 많이 작용하는 한국적 현실에 비춰볼 때 신선함마저 느껴진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각광받는 한국 작가들은 작품 그 자체로 승부를 건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과연 외국인들은 어떤 작품들을 좋아할까. 》

○ 노동이 배인 작품을 선호한다

갤러리 현대 도형태 부장은 “외국인들은 워낙 첨단과 인공에 익숙하고 사람 값이 비싸다 보니, 작업에 우선 정성과 공력이 들어간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호한다”며 “그런 작품들을 통해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 인간의 혼과 에너지를 느끼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신성희, 노상균, 김순례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재프랑스 화가 신성희씨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를 갖고 이를 2∼5cm의 조각으로 잘라낸 뒤 이 조각들을 접고 묶고 재봉하고 매듭을 지어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은 98년부터 각종 해외 아트페어에 나와 매진을 기록했는데 캔버스 안 작은 매듭 하나하나에 들어간 작가의 노력이 명상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평이다.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노상균씨도 시퀸(일명 반짝이)이라는 대중적 소재를 갖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99년 바젤 아트페어에서 매진을 기록하는 등 최근 그의 작품도 해외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손톱 크기보다 작은 시퀸을 수없이 이어붙인 그의 작품은 치열한 장인 정신과 동양적 사유를 결합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지로 틀을 떠서 만든 인형의 피부에 플라스틱 스트로를 수없이 잘라 ‘초영(딸 이름)의 친구들’이라는 인형시리즈와 다양한 입체작들을 선보이고 있는 재독 작가 김순례씨 작품도 키 30cm 한 개의 인형에 몇천개씩의 작은 빨대조각들을 붙인 대표적인 수공업적 작품. 지난해 바젤 아트페어에서 25점 중 22점이 팔렸고 시카고 아트페어에서도 20점이 팔렸다.

철사조각들을 한가닥씩 용접해 나뭇잎, 꽃잎, 항아리 등의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 정광호씨도 섬세한 작업으로 철이라는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작품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한 젊은 작가 최우람씨(33)는 바젤 아트페어 오픈 첫날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 ‘Ultra Mudfox’ 두 점이 모두 팔려 주목을 받았다.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키네틱 조각과 로봇 조각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역시 재치 있는 상상력에 정교한 노동의 흔적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한국적 정체성을 살렸다

전시장에서 수없이 많은 그림들을 둘러보다 보면, 뭐니 뭐니 해도 그 나라 특유의 정체성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눈에 띄는 법이다. 한국 역시 한국적 모티브를 살렸거나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들이 전광영, 함섭, 조덕현씨 등이다. 이들은 한지라는 우리 고유의 재료를 쓰거나 한국의 옛 사람들과 풍경을 소재로 해 우리 것을 세계화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작은 삼각형 스티로폼을 한지로 싸서 캔버스에 붙이거나 입체로 만들어온 전광영씨는 시카고, 바젤 등 굴지의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매진되었고 올해 바젤 아트페어에서는 주목받는 작가전에 따로 초대를 받았다. 98년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와 99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매진되었던 함섭씨도 붓질 한 번 하지 않고 한지라는 원료의 재료적 감각을 그대로 살려 동양적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는 평이다. 전씨나 함씨 모두 한지를 이용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으며 오랜 무명의 세월을 겪다 중년의 나이에 외국에서 먼저 주목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인물 사진을 옮겨 그리는 회화 작업으로 잘 알려진 조덕현씨는 낡고 오래된 한국의 옛날 사진들을 섬세하게 옮겨 ‘세월의 겹’을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높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작가들은 국내의 대가급 원로가 아니라 대부분 1만달러(약 1200만원)에서 많아야 3만∼4만달러대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견 신진작가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사진과 회화를 접목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준성씨는 올 바젤 아트페어에서 17점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는데 작품도 좋았지만, 2000∼1만달러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서양화가 김찬일씨도 올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12점의 작품이 모두 팔려 눈길을 끌었는데 한 점당 1000∼5000달러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다는 평을 들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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