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서울거리 수놓은 이색 바닥장식물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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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나운규(羅雲奎)가 한국 최초의 영화 ‘아리랑’을 촬영했던 서울 성북구 아리랑고개. 최근 이곳에 이색적인 보도 장식물이 등장했다. 이곳을 ‘영화의 거리’로 조성하고 있는 성북구는 국내외 영화 포스터를 동판으로 떠 보도 바닥에 설치했다. 현재 60여개가 설치됐고 앞으로 90여개가 깔리게 된다.

한 주민은 26일 “맞아, 여기서 한때 최무룡 김지미도 살았지. 그것 참 기발한 아이디어야”라면서 즐거워했다.

종로구는 이달 초 인사동길 돌벤치에 현대시와 시조를 새겨 넣었다. 돌벤치의 딱딱함과 무거움을 덜어내고 보행자에게 명시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구는 90여개 돌벤치 가운데 우선 7개에 김삿갓의 시조, 노천명의 ‘사슴’,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등을 새겼다. 앞으로 매년 5∼7편의 시를 새겨 넣을 계획이다. 인사동길에는 훈민정음 서문을 새긴 나무 밑동 보호판도 있다.

장마가 잠시 그친 26일 오전 덕수궁길에서 여고생들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이게 뭐지. 아, 우리가 방금 들렀던 시립미술관이구나.”

“여기 은행잎도 있다, 얘.”

덕수궁길 곳곳엔 옛 러시아공사관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대한문 등 주변 명소와 은행잎을 그려 넣은 타일이 깔려 있다. 또 19세기, 20세기 초, 광복 직후, 1990년대 말의 지도를 그린 타일도 있다. 경복궁 동쪽 담길을 걷다보면 주변 약도를 새긴 커다란 석판을 만날 수 있다.

서울 거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장식물들이다.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고 행인을 즐겁게 한다. 그 덕분에 거리가 한층 더 낭만적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는다. 인사동길에 대한 한 미술인의 지적.

“김소월 노천명 시도 좋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아 좀 식상해요. 다양한 분위기의 참신한 시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어요.”

돌벤치에 새겨진 글씨체도 구태의연하다. 대부분 예서체여서 생동감이 떨어진다. 시인의 육필 원고 글씨체를 옮겨 새긴다면 시인의 체취가 진하게 전해오지 않을까.

‘영화의 거리’도 마찬가지. 포스터 동판을 2개씩 10여m 간격으로 깔아 놓아 질서정연한 감은 있지만 왠지 딱딱하고 획일적이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마무리가 세련되지 못한 아쉬움이다.

내년 조성될 시청 앞 광장에선 새로운 실험이 이뤄진다. 광장 곳곳에 구덩이를 파고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 2000여개를 설치한 뒤 유리로 덮어 그 위를 걸어 다니도록 꾸며진다.

그 때가 되면 모니터의 다양한 화면과 여고생들의 유쾌한 수다가 서로 어울려 시청 앞 광장을 화사하게 수놓지 않을까.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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