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수사 말 말 말…수많은 후담 뿌려

  • 입력 2003년 6월 25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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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일의 대장정을 마친 대북송금 특검 수사는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사안답게 수많은 뒷이야기를 뿌렸다.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 한광옥(韓光玉)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기호(李起浩) 전 대통령경제수석 등 과거 정권의 실세들이 특검 수사에 응하며 자못 비감하게 밝힌 소회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박 전 장관은 조지훈의 시 '낙화'를 읊었고, 한 전 장관은 "한광옥이 죽어서 김 전 대통령이 수모를 벗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이 전 수석은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김종훈(金宗勳) 특검보가 브리핑 도중 "이번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자"며 눈시울을 붉혔던 일도 화제가 됐다.

거물급 인사들의 위신에 걸맞지 않은 '기자 따돌리기' 작전도 화제가 됐다.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은 소환 조사를 받고 나갈 때마다 특검 사무실 앞 8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해 도망쳤고,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기자들을 피하려고 조명도 없는 깜깜한 계단을 1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왔다.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긴급체포 후 구치소 이감이 결정되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송 카메라를 피해 몸을 돌려 벽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국가정보원은 수표 배서자가 소환될 때 직원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가짜 소환자'들을 동원, 007 작전을 펼쳤다가 특검팀과 취재진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다음날 정식 사과하기도 했다.

◆특검 말말말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김재수 현대그룹 경영전략팀 사장, 6월12일 소환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자신과의 대질 조사에서 틀린 진술을 한다고 비난하며.

▽분식은 분식집에 가서 찾아보라-김재수 현대그룹 경영전략팀 사장, 현대의 분식회계에 대해 기자들이 집요하게 질문하자.

▽출근해야죠-김재수 현대그룹 경영전략팀 사장, 6월2일 계속되는 대질신문으로 연일 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게 되자 다음날도 또 나오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꽃이 진들 바람을 탓하랴-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6월18일 구속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지법 법정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처지를 조지훈의 시 '낙화'에 비유하며.

▽제가 십자가를 져야죠-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 6월3일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장관과의 대북송금 협의사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러면 잘 안되길 바랍니까-임동원 전 원장, 5월22일 특검에 소환됐을 때 "햇볕정책에 대한 신념에는 변함 없냐"는 질문에 단호한 어조로 대답하며.

▽한광옥이 죽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온갖 수모와 암울한 정치적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6월5일 특검에 소환되면서 변호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자. 일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연결된 게 아니지 않은가. 갈라진…또 다른 상대인 북이 있지 않나-김종훈 특검보, 5월16일 특검 정례 브리핑에서 언론의 앞서가는 보도가 가져올 국가적 불이익과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설명하며.

▽검찰은 특검을 의식해서 더 잘 조사할 것이다. 요즘 검찰팀은 우수하다-특검 자금추적팀 관계자, 23일 특검 수사기간 연장 거부가 알려지자.

▽기자 여러분들은 나중에 나 같은 꼴 당하지 마세요. 옛날엔 젊은 기자분들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해 드릴 말씀이 없네요-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 계속되는 소환 조사로 특검팀에 출두할 때마다 받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뒤집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나를 포기하면서,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하려고 했다고 생각해 달라-김종훈 특검보, 23일 특검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수사기간 연장과 맞바꾸려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답으로.

▽작년에 김영완이 집에서 강도당한 일이 있는데 그런 일 아나-박광빈 특검보, 18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박 전 장관에게 재미사업가 김씨와 친한 사이가 아니냐고 추궁하며.

▽북한은 법적으로 적성국가이지만 형제 국가다. 통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정법 위반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18일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최후 진술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대통령 특사로 참가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만약 지금 또 다시 그런 임무를 대통령이 부여한다면 더 성실하게 임할 것을 말씀드린다-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17일 특검에 출두하며 소회를 묻는 질문에 답으로.

▽CD 150장을 건네줬더니 박 장관이 왼손 한 손으로 받았다-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6월17일까지 진행된 특검 수사에서 박지원 전 장관에게 150억원을 건네줬다고 진술하며.

▽당시 이익치는 손을 벌벌 떨며 위와 같이 진술했지요-김주원 변호사, 6월18일 박지원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영장실질심사에서 이익치 전 회장이 박 전 장관에 돈을 건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며.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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