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盧, 난국타개 능력 있는지 의문"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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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본보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현 시국에 대해 우려 섞인 충정을 밝힌 김수환 추기경. 사진은 지난해 초 본보와의 신년대담 때 촬영한 것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23일 본보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현 시국에 대해 우려 섞인 충정을 밝힌 김수환 추기경. 사진은 지난해 초 본보와의 신년대담 때 촬영한 것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본보는 20일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에게 “이 나라가 처한 현실 상황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타개하기 위한 길잡이가 될 말씀을 듣고 싶다”며 인터뷰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김 추기경은 21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겠느냐”며 인터뷰를 사양했으나 23일 어경택(魚慶澤) 본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로 현 시국 등에 관한 의견을 피력했다. 》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께서는 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난국을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듣고 싶어 인터뷰 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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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 盧정부에 고언

“제가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얘기는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장인 대통령께서 이를 잘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취임 후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으나 100일 정도 지나면 나아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언제쯤 좀 나아질지 의문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문제가 많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노 대통령이 이 난국을 타개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본질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국민은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만의 문제입니까.

“모든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이 함께 한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해야 합니다. 여야의 대립이 극심해지고 신당이니 뭐니 하면서 싸움이 계속되고 있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인데도 이 사회의 책임자들은 이를 통감하지 못한 채 각자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늘(23일) 아침에는 노 대통령이 대북 송금 사건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절하여 정국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특검을 하도록 한번 허락했으면 그대로 가도록 해줘야 하는데 여기에서 중단하면 그 나머지 수사는 어떻게 합니까. 검찰이 인계받아 한다고 하지만 국민이 그것을 신뢰합니까. 검찰은 이 정부의 지휘하에 있는 것 아닙니까. 수사 기간을 연장하느냐에 대한 판단은 특검에 맡겼어야 합니다. 30일을 연장해서도 수사가 제대로 안 된다면 추가로 20일을 더 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통령도 당당할 것 아닙니까. 특검을 계속하면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중단하면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특검이 끝까지 책임을 다하게 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곳곳에 불안한 요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주부터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를 것 같습니다.

“약자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도 대국적으로 보아 파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파업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그 영향은 경영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미칩니다. 그래서 일자리도 잃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수입도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극단적 파업은 자제해야죠. 조흥은행노조 파업 사태에서도 정부측이 양보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면 그것은 수습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반미(反美)의 목소리가 높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보수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양측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 같아 이를 걱정하는 소리도 많습니다. 엊그제는 서울시청 앞에서 반핵(反核), 반김정일(反金正日),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는 10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민집회도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번 미국에 가서 미국과의 공조를 굳게 약속했습니다. 또 일본에 가서도 한미일의 공조를 다짐했습니다. 이런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합니다. 약속을 하고 돌아와서 딴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미국과의 공조를 깨어도 좋을 처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한 것도 미국이 동맹국으로 주둔하고 우리를 지켜줬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간다거나 두 나라간의 공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온 세계가 우리를 불신할 것입니다. 또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며칠 전 6·15선언 3주년을 맞아 KBS TV에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에게 미군은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정일도 여기에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은 통일 후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한미동맹을 해치면 우리만 손해이며 일본과 중국도 우리를 믿지 않을 것이고 국제사회에서의 신용도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여러 현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하느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도 핵무장을 한다고 나서서 악순환이 계속 될 뿐입니다. 북한이 생존하려면 우선 핵을 폐기해야 합니다. 그 대신 미국도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경제원조도 해줘야 합니다. 이것이 북한이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에 대해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북한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 강하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미국과 일본에 힘 있는 소리로 들려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가 하나가 되면 우리 말에 힘이 실릴 것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습니까.

“노 대통령은 말 바꾸기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국민 모두에게 자신의 말을 믿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문을 제대로 읽으라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신문도 읽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동아일보도 포함되는 줄 압니다. 노 대통령은 신문 때문에 뭐가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항상 신문을 잘 읽으라고 얘기했습니다. 신문을 꾸준히 읽어야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리=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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