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신비]애인 볼때의 뇌 포르노 볼때의 뇌

  • 입력 2003년 6월 22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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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덧없는 육체적 사랑의 신이며, 그녀의 아들 에로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에로스도 어쩔 수 없이 한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프시케라는 인간 여성을 화살로 찌르려다 실수로 자신의 손을 찌르고 만 것이다.

프시케는 에로스와 결혼한 뒤 여신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스인은 육체적 사랑은 신이, 정신적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 두 가지 인간의 행위, 즉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최근 영국 런던대의 바르텔스 교수 팀은 사랑에 푹 빠졌다고 믿는 자원자 17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애인의 사진을 보여 주며 동시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했다. 이때 혈류량이 증가한 뇌의 부위는 도피질, 대상회, 기저핵, 그리고 소뇌였다.

도피질은 전두엽(이마엽)의 아랫부분에 파묻힌, 변연계(가장자리계·감정의 뇌)와 많은 연결을 가진 곳이다.

대상회는 전두엽에 가까운 변연계이다. 그렇다면 이런 곳들이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을 만들어 내는 부위인가.

그러나 이보다 먼저 프랑스 리옹의 스톨레루 교수 팀은 7명의 건장한 청년에게 포르노 영화를 보여주며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활성화된 부분 역시 위의 경우와 거의 동일한 곳이었다.

동물과는 달리 변연계 주변부, 혹은 변연계와 연관된 전두엽, 기저핵 등이 폭넓게 사용되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인간의 육체적인 욕망조차 동물의 감정보다는 더 복잡하고 고상한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위의 결과는 의아하게 생각된다.

애인을 바라볼 때와 포르노를 볼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동일하다면 인간에게 있어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의 구분이란 무의미한 것인가.

우리들이 흔히 매료되는 단 한 번의 진실한 사랑이란 단지 허구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이와 같은 몇몇 실험 결과만을 갖고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구분하기에 아직 우리의 기술 수준이 미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 사랑과 아폴론적 사랑의 차이에 관해서는 당분간 결론을 유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김종성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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