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식물성의 사유'…'전통'에 갇힌 우리그림의 해방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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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의 사유/박영택 지음/316쪽 2만원 마음산책

시를 말하면서 학생들에게나 스스로에게나 늘 강조해 마지않는 것이 있었다. 일러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다. 김흥호 선생의 풀이로 하자면 ‘천하의 모든 물건을 가서 붙잡고서, 이미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모르는 세계를 자꾸자꾸 파고 들어가서, 결국 마지막 궁극의 이치까지 도달하지 않는 것이 없도록 오랫동안 힘을 써서 공부하여 간다면, 어느 날 아침에 전체가 하나로 꿰뚫어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참으로 평범해서 더더욱 충격을 준 한마디는 ‘가서 붙잡고서’라는 말이었다. ‘그래, 그것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라는 결론이야말로 참으로 공부의 시작을 가르치는 것이고 또 끝을 암시하고 있지 않는가.

가서 만져보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각각의 자연적 사물들에 도(道)가 깃들어 있음을 동양적 사유의 전통은 일러준 터이다. 인위적 물건에는 자연의 그것처럼 품이 없어서 쉽게 들어설 만한 사유 공간이 없다. 그래서 대개 자연의 물상들에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비춰보고 발견한다. 그 발견이 언어로 번안될 때는 시가 되고 색채로 형태로 번안될 때는 미술이 되며 음으로 체계를 갖출 때는 음악이다. 저자 박영택 교수가 가슴으로부터 만져보는 여기 이 미술품들은 그러한 동양적 사유의 맥락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각각의 텍스트들은 그 작가의 격물의 풍경이라고 해서 틀리지 않겠다.

미술가들의 ‘격물’의 대상이 식물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우선 행복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그림과 현대 미술품을 일관된 주제에 따라 소개한 이 책을 읽으면서, 식물에 대해서 매우 자유롭고 행복한 사유를 구사할 수 있는 미술가들이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식물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까지 깊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의 발견 자체도 행복한 일이었다.

‘풀’과 ‘꽃’과 ‘씨앗’으로 시작한 식물성 미술의 여행은 ‘사군자’에 이른다. 화석화된 사군자의 전통에 이토록 재미있는, 난을 그려놓고 ‘그냥 풀’이라고 써넣는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은 통쾌하다. 마른 사과껍질과 가지의 껍질을 난의 형태로 배치해 그린 그림에서 저자는 화석화된 전통의 의미를 무로 되돌리려는 작가의 마음을 읽는다. 그렇게 새로움은 무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나무’와 ‘숲’과 ‘산’, ‘땅’과 ‘새’와 ‘하늘’, ‘바다’와 ‘돌’과 ‘정물’로 이어지는 지금 동시대 우리 미술을 관통하는 식물적 사유의 기행은 ‘풍경’과 ‘반풍경’이라는 단락으로 마무리짓는다. 자 이만하면 어떤 구도가 잡히지 않는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자연은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과연 무엇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미술가들의 영혼을 통해서 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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