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학교를 사랑하는…' 佛교육부장관 교육개혁 편지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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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a ceux qui aiment l’´ecole)/오딜자콥 출판사, 2003년

60년 만에 월 평균기온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6월 더위 속에, 파리지앵들의 일상이 파업과 시위로 흔들리고 있다. 장피에르 라파랭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여 노동총동맹(CGT) 등 강경 노조가 주도하는 연대 파업과 가두시위가 연일 계속되자 지난 일요일엔 파업에 지친 파리 시민들이 파업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파업과 시위에 유독 너그러운 나라인 프랑스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번 파업의 또 다른 빌미는 교육부 장관 뤽 페리의 교육개혁안이 제공했다. 그의 개혁안은 학교문맹 퇴치, 교내폭력 근절, 교육경쟁력 강화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 이 중 걸림돌이 된 것은 효율적 교원인사 시스템과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의 지방분권화(d´ecentralisation) 정책이다. 이번 개혁안은 중앙정부에서 관장했던 일부 행정직 교육공무원 인사를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데 국한돼 있다. 그러나 사회보장의 질을 떨어뜨리는 연금개혁안으로 야기된 불만 때문인지, 공립 교원노조는 교육부의 지방분권화 정책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원들은 ‘교육기회 불평등 반대’라는 슬로건을 들고 시위현장에 나왔지만, 그보다는 직업인으로서 갖는 불만과 불안을 토로하는 것 같았다.

철학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페리 장관은 4월 자신의 개혁안을 소개하기 위해 ‘학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내놓았다. 80만권이 무료로 배포되고 두 달 사이에 6만5000권이나 팔린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교육개혁을 위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한 ‘용기 있는 저작’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단순한 정책 홍보 책자라는 비난도 있다. 이 와중에 책은 시위 현장에서 찢기고 불태워지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페리 장관은 프랑수아 베이루, 클로드 알레그르, 자크 랑 등 전직 교육부 장관들의 교육개혁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실상 그의 개혁안은 라파랭 정권 이전에 그 틀이 마련된 것이다.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비슷한 개혁안이 마련되었을 텐데 이처럼 교육현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아쉬움을 갖게 하는 대목은 연금개혁과 교육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동시에 건드렸다는 점이다. 시장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교육개혁 문제가 연금개혁 문제와 함께 다루어지면서 빛이 바랜 느낌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페리 장관은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가 남은 교육개혁안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교육현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교육부는 어느 부처보다도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정책을 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교육계의 현 사태는 얼마 전 비슷한 소용돌이를 겪은 한국의 교육계에도 ‘먼 나라의 일’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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