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고재경/"남자 노릇 못해먹겠다"

  • 입력 2003년 6월 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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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남성 노릇 못해먹겠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말한 것이 유행어가 되어 있다. 이 말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연상되는 말이 있다. “남성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남성들 사이에 이 말이 부지불식간에 발설되어 이제는 거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 사회는 가정의 경제권이 남성에서 여성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일례로, 급여가 은행통장으로 온라인 입금되기 때문에 정작 월급날에도 남성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급여명세표만 달랑 들고 쓸쓸히 귀가해야 하는 남성의 딱한 처지를 과연 누가 이해하랴.

가정의 경제권도 문제이지만 성적(性的)인 영역에서도 여성은 이제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 듯하다. 남성의 성기능장애로 인한 파경을 예방하기 위해 요즘 ‘남성증명서’가 ‘혼수품’ 중의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스스로 성적 능력을 입증하도록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이래저래 ‘남성 노릇 못해먹겠다’는 볼멘소리나 불평이 나올 만하다.

이처럼 경제권이나 성 개념에서 여성들의 힘은 갈수록 그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모권사회 회귀화 흐름에 따른 새로운 문제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과거 모권사회에서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성은 화장을 했다. 요즘 그 모권사회의 퇴행적 흔적인 젊은 남성들의 화장 행위, 제왕절개수술을 줄여 모체를 보호하자는 모권 수호 퍼포먼스, 가족간의 대화가 점차 단절되는 상황과 맞물려 남자아이들의 여성화 등의 풍조는 바로 모권사회 회귀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남자들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요즘, 오래 전 영국 작가 D H 로렌스가 말했던 수탉 같은 여성과 암탉 같은 남성 시대의 출현이 이미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점에서 “남성 노릇 못해먹겠다”고 하소연하는 ‘고개 숙인’ 남성들도 삶의 능동성이나 재미를 갖도록 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남녀 공존사회의 윤리이자 예의가 아닐까.

고재경 수필가·배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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