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훈/청와대 '뒷북'의 끝은?

  • 입력 2003년 6월 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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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3시반경.

석간인 부산일보가 이날짜 신문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후원회장이던 이기명(李基明)씨의 경기 용인시 땅 1차 매수인은 부산 창신섬유의 강금원 회장’이라고 보도한 사실이 전해진 뒤 청와대 기자실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그러나 정작 확인을 요청하는 기자들의 쇄도하는 질문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반응은 조금 과장해 말하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주무 수석비서관인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은 물론 실무적으로 확인작업을 맡아온 박범계(朴範界) 민정2비서관 등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기사를 보고 얘기하겠다” “알아서 하라”는 식의 회피성 답변만 내놨다.

그나마 보도 내용을 비공식으로 확인해준 한 관계자는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리가 먼저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부산일보 보도 내용에 ‘강 회장 본인이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막았다’는 민감한 내용도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 내용은 “호의적으로 도와준 분을 보호하기 위해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청와대측 설명과 정면 배치되는 대목인데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나는 아니다”라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청와대측의 이날 대응은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의혹이 생길 때마다 ‘나몰라라’식으로 대응하다가는 며칠 뒤에야 뒷북을 치는 식의 대응을 해 의혹을 더욱 증폭시켜온 청와대측의 대응방식을 또 한번 되풀이해 보여준 사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청와대는 용인 땅의 1차 매매계약서 사본을 공개하는 과정에서도 특약사항 2, 3조를 삭제한 채 공개했다가 뒤늦게 언론 보도를 통해 ‘10억원의 채무를 승계한다’는 조건이 있었다는 내용이 밝혀지자 부랴부랴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청와대측의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 때문에 이제는 한나라당 쪽에서 제기하는 “대통령과 강 회장 간에 무슨 뒷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쉬쉬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노 대통령은 2일 취임 100일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각종 의혹에 대해) 언론이 확실한 근거를 갖고 보도해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태도를 탓하기에 앞서 청와대의 무성의하고 애매모호한 태도가 그동안 의혹을 더욱 키워온 주된 요인이라는 점을 청와대측이 돌이켜 봤으면 한다. 무엇보다 언론에 대한 무성의한 자세가 ‘국민의 참여’를 강조해온 참여정부의 슬로건에도 스스로 배치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듯하다.

김정훈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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