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환기/日문화 개방 겁낼것 없다

  • 입력 1998년 4월 29일 19시 40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문제와 관련해 국내에서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왜 하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고 있는 이 시기에 일본 ‘문화 상품’을 개방하느냐, 대일 무역적자만 늘리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며 개방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의견을 좀 달리한다.

▼어떤 문화도 장단점 있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경제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두가지는 전혀 차원을 달리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적자는 한국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이것을 개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기술개발에 전념해 기술 입국의 대열에 서게 될 때까지는 무역역조 해소는 요원한 일이다.

대일무역적자의 시정을 요구하며 한국 정부와 매스컴이 불공정 무역이라고 일본측을 공격하는데 이 논조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증가하는 무역역조에 화가 나면 일본 상품을 사지 않으면 된다. 예컨대 부품 같은 것을 사고 싶지 않으면 자국에서 한시라도 빨리 품질 좋은 제품을 개발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부품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이것은 수요와 공급의 간단한 논리다.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면 퇴폐 저속 문화가 국내에 들어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일본측 업자가 혜택을 보게 되리라고 걱정한 나머지 정부는 오늘날까지 문호를 닫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국내에 일본 대중문화가 적지 않게 침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과 가까운 남부지방에서는 1960년대부터 라디오는 말할 것도 없고 텔레비전에 간단한 장치만 하면 일본의 교육프로그램이나 차마 눈뜨고 보기 거북한 저속한 프로그램이 안방까지 쉽사리 들어온다. 위성텔레비전 방송으로 일본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일간지도 접할 수 있다. 일본 것을 모방한 불건전한 만화책, 별로 내용도 없는 읽을거리 등도 서점에 널려 있다. 한국의 노래방에서는 일본 유행가도 부를 수 있게 돼있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일 양국간에 연간 3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며 정치 경제 문화 학술 스포츠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통해 나름대로 양국 문화를 흡수 소화하고 있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본 문화의 실체를 알고 싶다, 보고 싶다, 듣고 싶다는 사람들은 현재 자유왕래가 가능하므로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는 일이다. 교육자들은 대중문화 개방이 문화 침략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일본 문화 상품의 수입과 크게 히트한 영화 상영 등 한동안 일본문화가 붐을 일으켜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찍이 4세기 전후부터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문화 선진국이었다. 여기에 긍지를 갖고 포르노 따위의 퇴폐적인 문화에 오염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자의 당연한 의무다. 어느나라 문화에도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취사선택은 국민의 몫▼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국제화시대에 다른 나라 문화의 유입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국민의 양식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고대로부터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장 밀접한 사이였다. 거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문화를 외면하면서 과연 친선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손(損)과 득(得)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사고와 논리로부터 탈피해 좀 유연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정환기<재일실업가·나고야한국학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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