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밤샘조사는 고문이다

  • 입력 1998년 4월 29일 19시 40분


검찰이 전 정권때의 각종 비리의혹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와 참고인에 대해 밤샘조사를 일삼고 있는 모양이다.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선정 비리사건의 참고인이 조사도중 벌인 자해소동도 강압적 밤샘조사가 한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밤샘조사가 많다는 지난주 본보의 보도와 법무장관의 금지지시 이후에도 검찰의 수사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밤샘조사는 인권보호 측면에서 묵과할 수 없는 가혹행위다. 짧은 기간에 방대한 조사를 해야 하는 검찰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럴수록 정도(正道)를 걸어 설득력있는 결과를 내놓으려고 애써야 옳다. 검찰이 한창 진행하고 있는 수사 자체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밤샘조사라는 구태의연한 수사방법의 위법성과 인권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피의자나 참고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진술거부권을 포함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조사받을 권리가 있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를 강행하는 것은 고문(拷問)이나 다를 바 없다. 밤샘조사가 위법이라는 명문규정은 없으나 밤샘조사로 받아낸 자백에 대해서는 대체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법원 판례를 비롯한 법원 판결의 추세다.

법원이 밤샘조사에 의한 자백을 배척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권침해 우려와 진술내용의 거짓 가능성 때문이다. 잠을 자지 못해 피로에 지치면 자포자기한 나머지 수사관의 요구대로 허위진술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이틀간 밤샘조사를 받고 나온 한 종금사 관계자는 진술서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명을 했다고 한다. 이런 진술은 법원의 실체적 진실발견 작업에도 방해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돼 있는 사건의 경우 적법절차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수사관들의 과잉의욕이 자칫 인권침해를 부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혹행위 등 수사절차의 위법성 시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공정성을 의심받은 사건을 우리는 지난날 수없이 보아 왔다. 특히 새 정부 출범 후 법무부와 검찰은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공안사건 수사에서도 인권을 중시하는 ‘신(新)공안’개념을 설정해 주목받고 있다.

이런 때에 밤샘조사라는 구시대적 수사방법의 답습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는 인권보호, 뒤에서는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인권은 장식용으로 걸어놓기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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