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의 책임과 선택

  • 입력 1998년 4월 13일 19시 40분


일본 엔화가치 폭락으로 술렁이던 세계금융시장과 아시아 국가들의 제2환란(換亂)우려가 진정국면으로 돌아섰다. 일본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엔화 강세를 유도한 결과 지난주 엔화 가치는 연일 상승세로 이어졌다. 일부 국제금융전문가들은 3년간의 고(高)달러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기부양책이 단기적인 대증요법에 불과한데다 미국의 환율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아직 없고 보면 엔화 약세, 달러화 강세라는 대세가 바뀌리라는 기대는 성급한 낙관이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가 9일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전후 최대규모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소득주민세율인하와 재정확대 등의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한 중증의 일본경제를 회생시키는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일본의 경기부양책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도 아직은 부정적이다. 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과감한 규제완화 등 정책 전반에 대한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금 최대의 관심사는 일본의 경기부양책이 얼마만큼 내수진작 효과를 나타낼 것이며 미국과 일본의 공조는 과연 견고한가 하는 점이다.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 등의 요구에 떼밀려 몇차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과 일본이 3년만에 국제외환시장에 공동개입해 엔화 약세의 급한 불을 껐지만 그같은 노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엔화 강세가 아시아 각국의 통화강세로 이어지면 미국의 대(對)아시아 무역적자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자칫 달러표시 자산매각을 불러올 수 있는 자본시장의 동요를 바라겠느냐는 의문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가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나 엔화 약세와 달러화 강세 시정을 위한 협의를 갖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이 자리에서 일본은 보다 강력한 추가 경기부양대책과 조세감면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동남아 경제위기와 관련한 일본의 책임론에 앞서 ‘일본팔기’저지 등 스스로를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다. 미국과 다른 서방선진국들도 일본의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공동노력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우리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엔고의 수출 호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엔화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산업구조조정과 시설투자 확대,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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