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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최정호/신문은 밥값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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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최정호/신문은 밥값을 해라!

입력 1998-04-06 19:59수정 2009-09-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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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를 그만두고 나온 뒤에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큰 특권을 누리고 살아왔느냐는 것을 깨달았다.” 유신 치하에서 해직된 어느 신문인이 실토했던 얘기다.

오늘날 이른바 경제난국으로 신문사를 그만둔 사람들은 그동안 큰 특권만이 아니라 얼마나 과분한 수익까지 누려왔던 것인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 묻혀 있으면 모를 수 있어도 밖에서 보는 눈엔 신문사란 분명 하나의 권력기관이고 신문기자들은 하나의 특권계급이다. 게다가 한국신문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이 땅의 신문인은 서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지난날 매우 높은 사회적 평가와 명예조차 누려왔다.

문제는 신문인이 누리는 그같은 권력과 수익과 명예가 정당한 것이냐 하는데 있다. 밖에서 보기엔 그 어느 것도 오늘에 와서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신문의 위기상황이 아닌가 여겨진다.

신문인의 권력과 수익과 명예.

순서를 거꾸로 해서 ‘명예’부터 따져보자. 17세기의 서유럽 신문은 예외없이 장사치들의 돈을 벌기 위한 상업적 동기에서 탄생하였다. 그와는 달리 19세기 구한말이나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간행된 이 땅의 신문은 돈을 벌기보다는 ‘개화의 수단’으로, 또는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상업적 동기보다는 ‘계몽적’ 동기에서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신문인이 예외적으로 누려온 높은 평가와 명예의 근원이었다. 그 평가와 명예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광주의 대학살로 정권을 도득(圖得)한 신군부가 이 땅을 통치했던 80년대는 한국언론의 ‘암흑기’였다. 소신있는 많은 언론인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많은 언론기관이 강제로 통폐합되는 중세기적 만행이 그때 자행되었다.

그러나 그같은 한국언론의 암흑기였던 80년대가 다른 한편으론 신문기업과 거기에 종사하는 ‘봉급쟁이 신문인’들에게는 공전의 호황을 안겨다준 ‘황금기’였다는 사실은 기가 막히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신군부의 모진 몽둥이 매를 맞으면서 절정감의 재미를 본 80년대의 한국 언론에 대해서 그 당시에도 신문을 비판해 달라는 ‘신문주간’의 주문을 받고 나는 ‘언론의 마조히즘(피학음란증·被虐淫亂症)’이란 글을 적은 일이 있다. 권력의 강압으로 부당하게 문닫게 된 동업인들의 억울한 희생위에서 광고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독과점함으로써 누리게 된 80년대 언론기업의 호황과 언론인의 높은 수익이 떳떳한 것이었는지…. 통폐합되지 않고 살아 남은 신문인들은 80년대의 ‘부끄러운 황금기’에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럴 경우 서유럽 사람들은 ‘솔리대리티(공동연대)’의 윤리를 생각한다면 동양에서는 ‘이득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견득사의·見得思義)’이 기본적인 윤리였다.

80년대의 일대 호황은 90년대 한국신문의 지면확장 부수확장 무가지 남발의 과당경쟁으로 살인극까지 빚었다.

신문기자의 초봉은 대기업 신입사원의 그것을 웃돌고 신문사 입사시험에는 우수한 대졸자들이 1백대1, 2백대1의 경쟁도 마다않고 몰려들었다. 신문기자가 된다는 것은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고 신문사는 임기없는 권력기관이라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신문사는 틀림없이 권력기관이다. 경제난국으로 수익은 예전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신문인이 누리는 특권은 여전하다. 어느 언론인의 독백처럼 신문인은 유신치하에서도 나름대로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위한 권력이고 특권일까? 어느 시대에나 막강한 정부권력에 대해서, 그리고 산업화의 진행과 더불어 갈수록 비대해지는 기업의 재력에 대해서 그러한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신문이 제구실을 하려면 정치의 힘, 경제의 힘에 나부끼지 않은 언론 스스로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3의 권력으로서 언론기관은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

권력은 절대화를 추구하고 이윤은 극대화를 추구한다. 그것을 아무런 통제장치도 없이 방임한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파멸에 직면하고 만다는 것을 김영삼정권 말기에 불거져나온 국난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자기통제능력의 상실’이 빚은 결과다.

신문이 그런 통제능력도 갖지 못하고,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신문인은 무엇으로 스스로 누리는 권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신문은 밥값을 하라.

최정호<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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