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 정연한 논리로 각국 정상 맨투맨 공략

  • 입력 1998년 4월 5일 20시 14분


제2차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최대 성과는 유럽의 대(對)아시아 고위급 투자사절단 파견 합의였다. 대체로 선언적인 합의에 그치기 쉬운 다자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간에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 합의의 배경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제안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 각국 외무장관들로 구성된 준비각료회의가 2일(이하 한국시간) 의장성명서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김대통령이 처음 공론화한 것도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열린 2차 본회의에서였다.

김대통령의 구상이 구체화한 때는 2일 영국금융계 인사와의 조찬간담회 및 영국경제인연합회(CBI)초청연설회였을 것이라는 게 수행원들의 분석. 김대통령은 영국의 금융 경제인들이 기대를 뛰어넘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무척 고무됐다. 특히 에디 조지 영란은행총재의 발언은 김대통령에게 힘이 됐다. 그는 “김대통령의 글로벌한 철학과 진지한 자세에 감명 받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경제 금융분야 1차본회의에서 범세계적 현안인 아시아 금융위기가 토론의 초점이 되자 이 구상을 보다 확실히 가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체제에 대한 아시아 국가 정상들의 ‘불만’을 읽었고 이어 열린 정치문화분야 2차본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투자사절단 파견문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의제 외 발언이었으나 김대통령의 예상대로 각국 정상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참석자 중 유일한 여성인 아일랜드의 버티 어헌총리가 “김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적극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의장인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검토할 가치가 있는 좋은 방안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검토를 해나가자”며 논의를 일단 미루었다.

이때부터 김대통령은 발로 뛰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최한 만찬에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과 블레어총리 등을 만나 3차본회의에서 본격논의와 지지발언을 주문했다.

주룽지(朱鎔基)중국총리는 무언의 지원을 보냈으며 김대통령은 3차본회의를 앞두고 회의장에 일찍 나가 각국 정상들을 상대로 ‘지지유세’를 벌이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한 측근은 “아시아에 외국투자가 이뤄져야 외채를 갚고 고용을 증진하며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김대통령의 정연한 논리에 각국 정상들이 동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성사됐다”고 전했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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