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용희/또 과열-혼탁 부추긴 정치권

  • 입력 1998년 4월 2일 19시 28분


2일 영남권 네곳에서 실시된 재 보궐선거는 지난 연말 대통령선거 이후 처음 있는 여야 대결의 선거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재 보궐선거는 지나간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 그리고 앞으로 있을 지방 선거, 국회의원 총선 사이에서 여야가 격돌한 선거였기 때문에 대선 후 민심의 흐름을 보여준 선거였으며 지방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민심의 풍향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정계개편과 각 정당의 지도부 개편 및 위상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여야 정당은 당력을 집중해 전력 투구했다.

▼ 비현실적 공약 남발 ▼

이처럼 큰 의미가 있는 이번 재 보궐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이제는 곰곰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재 보궐선거는 지역 유권자가 재 보궐 선거 사유에 대한 재평가를 해서 결원을 보충하는 조용한 선거가 되어야 했다.

여야는 IMF 시대에 걸맞게 조용하면서도 돈 적게 드는 정책 대결의 선거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는 데도 합동연설회 때 보인 행태는 그렇지 못했다. ‘4·2’ 재 보궐선거에서 정책 대결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각지에서 동원된 청중들이 지지 정당의 후보가 연설할 때는 박수와 연호를 보내며 연설회장을 가득 메웠고 상대 후보의 연설이 시작되면 대거 퇴장하면서 연설회의 김을 빼는 행태가 여전히 계속됐다.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들이 남발됐으며 지난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때 이미 제시된 공약들이 재탕 삼탕되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품과 향응 제공 시비, 인신 공격, 흑색선전, 저질 발언 등 과거와 다를 바 없는 불법 타락 운동이 판을 쳤다.

또한 역대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였던 지역 감정이 이번 선거에서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정당 지원 유세 때마다 “37년간 지켜온 경상도 정권을 전라도에 빼앗겼다”거나 ‘영남 푸대접론’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경제 난국이기 때문에 여야는 경제 난국을 해결하는데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중앙당 총재를 위시하여 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면서 한 지역구의 당락이 경제 발전과 국가 발전의 관건이나 되는 것처럼 과장하여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선거 분위기를 과열 혼탁시킨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여야가 중앙당의 지원아래 재 보궐선거에 전력 투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속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여당인 국민회의는 영남권에 지역구 의원이 한 석도 없기 때문에 이번 재 보궐 선거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세 곳 이상 승리하지 않으면 현상유지가 어렵고 그로 인해 당의 분열 조짐과 정계개편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여야는 격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절박하고 한 석이라도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적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선거는 깨끗하고 공명정대하게 진행됐어야 한다. 더구나 이 지역들은 한보 비리 등 우리 국가 사회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든 범죄들 때문에 재선거 보궐 선거가 불가피해진 지역들이다. 재 보궐선거의 원인과 의미를 생각해서 정말 이번만은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지역구의 불명예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 이젠 위기극복에 온힘을 ▼

이제 재 보궐선거는 끝났다. 주민들은 자기 본업에 충실해야 하고 여야는 6·25 이후 가장 어려운 경제 난국에 직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 현실을 심각하게 직시해 재 보궐선거에서 한표라도 더 획득하기 위해 보여준 정성과 노력만큼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전력을 다해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선거결과에 대해서도 여야는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윤용희(경북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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