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유만근/「부모姓 같이쓰기」 문제많다

  • 입력 1997년 3월 13일 08시 18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최근 「부모성 같이쓰기 선언」을 했다. 예를 들어 「이철수」의 어머니가 김씨면 「이김철수」로 부르자는 주장이다. 그러니 어머니 성이 방씨면 「이방철수」, 복씨면 「이복철수」, 마씨면 「이마철수」가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2백여 성씨를 둘씩 짝지어 보라. 어감상 차마 성씨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흉하거나 민망한 사례가 수없이 생겨난다. 얼른 떠오르는 사례만 모아봐도 별의별 성씨가 다 나온다. 강도(姜都) 계모(桂毛) 고민(高閔) 공갈(公葛) 구박(具朴) 나태(羅太) 노예(盧芮) 박복(朴卜) 방구(方具) 방정(方丁) 배신(裵愼) 백정(白丁) 범인(范印) 변소(邊蘇) 변태(卞太) 봉변(奉卞) 부정(夫鄭) 사고(史高) 사형(史刑) 상여(尙余) 서방(徐方) 선지(宣池) 설사(薛史) 소피(蘇皮) 송장(宋張) 신음(申陰) 염소(廉蘇) 오강(吳姜) 왕초(王楚) 육시(陸柴) 음모(陰毛) 임신(任申) 전사(錢史) 좌천(左千) 주길(周吉) 지천(池千) 천박(千朴) 초조(楚曺) 최음(崔陰) 추남(秋南) 추태(秋太) 피임(皮任) 하인(河印) 황보지(皇甫池) 황천(黃千)…. 그러니 천생연분으로 남녀가 만나 서로 뜻이 맞아도 2세의 성씨를 떠올리다가 혼인을 포기하는 사태가 무더기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공연한 자승자박으로 동성동본 못지않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부모의 성을 합쳐서 성씨로 쓰는 세대끼리 혼인하면 그 다음 세대의 성씨는 4자 8자가 되지 않겠는가. 가령 「허어몽룡」과 「맹추춘향」이 낳게 될 아들의 성명은 「허어맹추철수」가 된다. 「사공독고갑돌」과 「남궁선우갑순」이 혼인하면 딸의 성명은 「사공독고남궁선우영희」가 돼야 한다. 나라밖의 경우를 보자. 육종학자 우장춘박사의 일본인 부인 성명은 남편 성씨를 알뜰히 따라 「우소춘」이다. 영국의 전총리 대처여사도 남편 성씨가 「대처」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혼인 후에도 친정아버지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여권」만큼은 이미 세계적으로 특전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하고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성씨문제를 끄집어내 평지풍파를 일으키려는지 모르겠다. 부모 성씨를 다 살려 쓰자는 취지는 얼른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혼인을 제약하는 흉한 굴레가 되고마는 셈이다. 제발 후손들의 축복받을 사랑에 공연한 훼방을 놓지 마시기 바란다. 유만근<성균관대교수·음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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