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3)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첫사랑〈3〉 아직 가슴이 작은 그 여자 아이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위대한 게츠비」를 읽고 난 다음부터일 겁니다. 그러니까 열일곱 살 가을쯤부터가 되겠지요. 그해 유난히 맑았던 하늘과 아직도 여전히 작았던 가슴을 지금의 가슴이 기억합니다. 여자 아이는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식구들이 다 본 신문에서 그 아저씨가 쓴 기사를 오리고, 그 아저씨가 쓴 기사 속의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조금씩 소녀티를 벗어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미처 읽지 못하더라도 아저씨가 쓴 기사 속의 책들은 꼭꼭 서점에 들러 샀습니다. 아저씨가 쓰는 다른 기사들도 차곡차곡 그렇게 모아두었습니다. 가위로 그것을 오리기 전에 실렸던 기사들도 뒤늦게 가입한 PC통신을 이용해 지나간 기사 파일 속에서 그것을 모두 다운받아 따로 인쇄를 했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렇게 다운받은 기사엔 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사만 읽을 때 늘 어딘가 조금은 허전하게 느껴졌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기사가 쉬는 화요일의 허전함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혹시 이 아저씨가 병이 난 게 아닐까. 우선 그런 생각부터 먼저 들곤 했습니다. 또 어떤 땐 이 연재가 이것으로 마지막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고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겨울도 한 가지 일은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날도 여자 아이는 자기 방으로 신문을 가져와 정성스레 그것을 오렸습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 영화가 소개된 카프카의 작품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넌 매일 뭘 그렇게 오리니?』 언제 들어온지도 모르게 딸의 방에 들어온 엄마가 등 뒤에서 그렇게 물었을 때 왜 그렇게 놀라며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는지요. 『뭘 매일 오린다고 그러세요?』 혼자 아무도 몰래 가슴을 만지다 누군가에게 그 모습을 보였을 때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던 그 마음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기사를 오리면서도 가끔 여자아이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이 아저씨는 모를 거야. 누군가 이렇게 자기가 쓴 글들을 하나하나 오려서 보관하고, 또 거기에 나오는 책들을 하나하나 사서 이쪽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책꽂이 하나를 거의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아저씨가 소개한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 그런 마음이었답니다. 이 아저씨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저씨도 어떤 땐 책을 읽으며 나처럼 비극적이기에 더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을 생각할 때가 있을까. <글 :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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