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중동의 침대축구, 그들은 왜 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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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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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는 시간 끌기의 달인이다. 그래도 우리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아시안컵 조별리그가 한창인 카타르의 알라얀 스타디움. 11일 이라크와의 라이벌전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이란의 아프신 고트비 감독은 흥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상대팀의 시간 끌기에 희생양이 될 뻔했다는 뉘앙스였다.

시간을 되돌려 지난해 9월 한국-이란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고트비 감독의 이란은 전반 선제골을 넣은 뒤 본격적으로 드러누웠다. 평가전이었음에도 인정사정없이 드러누운 덕분에 이란은 승리를 챙겼다. 조광래 한국대표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말로만 듣던 중동의 침대축구. 과연 대단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동축구 하면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침대축구(선제골을 넣은 뒤 약간의 신체 접촉만으로도 그라운드에 벌러덩 누워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다. 세계 축구 흐름이 빠르고 정직한 축구로 나아가고 있지만 중동에선 여전히 남의 얘기다.

중동에서만 유독 침대축구가 성행하는 이유는 뭘까.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의 기질에서 원인을 찾았다. “중동 사람들은 남 눈치를 별로 안 본다. 자기표현도 강하다. 그래서 상대 선수나 관중이 아무리 비난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같은 대학 오명근 아랍어과 교수는 “오래전부터 중동은 상업이 중심이 됐던 지역”이라며 “장사의 핵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창출하는 건데 그러다 보니 축구에서도 과정보다 승패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중동의 폐쇄적인 축구문화와 연관지었다. 자국 리그의 양적인 성장만 노려 오일머니를 동원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막다 보니 결국 세계화 흐름에 역행하게 됐다는 얘기다. 한 위원은 “폐쇄적인 문화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번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등 최근 중동축구의 침체 이유와도 관련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후진적인 축구행정과 떨어지는 심판 수준을 침대축구의 이유로 들었다. 신 교수는 “주먹구구식 축구행정으로 유명한 중동지역 축구협회들이 침대축구에 뚜렷한 제재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거기에 심판들까지 권위가 떨어지고 무능하니 개선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들의 오버 액션에 비교적 관대한 중동지역 팬들과 언론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중동의 침대축구 10계명

①막판 30분을 노려라(침대축구가 시작되는 시점은 보통 후반 10분 지날 무렵)

②다리를 잡고 쓰러져라(가장 꾀병 부리기 쉬운 부위가 다리. 시간 오래 끌기에도 적합)

③주심이 멀리 있을 때를 노려라

④표정은 리얼하게, 동작은 과장되게 해라

⑤지원사격을 받아라(한 명이 쓰러지면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해 침대축구에 정당성을 부여)

⑥벗어나면 살아나라(일단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신속하게 그라운드로 복귀)

⑦계속 자극하라(드러눕지 않았을 때도 상대 선수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침대축구 효과를 극대화)

⑧대범해라(침대축구의 핵심은 뻔뻔함. 관중 야유, 상대 선수 비난 등은 한 귀로 흘릴 만큼 대범함이 필수)

⑨타이밍을 잡아라(상대 공격이 거셀 때, 볼 점유율이 밀릴 때 적극적으로 시도)

⑩번갈아가며 해라(한 선수만 하면 찍히게 마련. 여러 선수가 번갈아 가며 할 때 상대 초조하게 만드는 효과 극대화)

※도움말: 신문선 명지대 교수, 한준희 KBS해설위원, 박문성 SBS해설위원, 송준섭 축구 대표팀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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