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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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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9>바람 부는 날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9>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 박성룡(1934∼2002) 오늘 따라 바람이 저렇게 쉴 새 없이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의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풀잎에 나뭇가지에 들길에 마을에 가을날 잎들이 말갛게 쓸리듯이 나는 오늘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 것…

    •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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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8>호박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8>호박

    호박 ― 이승희(1965∼ ) 엎드려 있었다지, 온 생애를 그렇게 단풍 차린 잎들이 떨어지며 는실난실 휘감겨와도 그 잎들 밤새 뒤척이며 속삭였건만 마른풀들 서로 몸 비비며 바람 속으로 함께 가자 하여도 제 그림자만 꾹 움켜잡고 엎드려만 있었다지. 설움도 외로움도 오래되면 둥글어지는…

    •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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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7> 벼랑 끝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7> 벼랑 끝

    벼랑 끝 ― 조정권(1949∼2017)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 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가다가 꽃을 만나면 마음은 꽃망울 속으로 가라앉아 재와 함께 섞이고, …

    •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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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6>봉숭아꽃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6>봉숭아꽃

    봉숭아꽃 ―민영(1934∼ )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

    •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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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5>차부에서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5>차부에서

    차부에서 ― 이시영(1949∼ )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차부(車部)에서였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 리를 짧게 올려친 젊은 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 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 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 었다. 아버지였다. 예전에는 많은 관계가 지금보다 …

    •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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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4>부목 살이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4>부목 살이

    부목 살이 ― 홍사성(1951∼ ) 퇴직하면 산속 작은 암자에서 군불이나 지 피는 부목 살이가 꿈이었다 마당에 풀 뽑고 법당 거미줄도 걷어내며 구름처럼 한가하 게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요즘 나는 신사동 어디쯤에서 돼지꼬리에 매달린 파리 쫓는 일 하며 산다 청소하고 손님…

    •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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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3>으름넝쿨꽃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3>으름넝쿨꽃

    으름넝쿨꽃 ―구재기(1950∼ ) 이월 스무 아흐렛날 면사무소 호적계에 들러서 꾀죄죄 때가 묻은 호적을 살펴보면 일곱 살 때 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의 붉은 줄이 있지 돌 안에 백일해로 죽은 두 형들의 붉은 줄이 있지 다섯 누이들이 시집가서 남긴 붉은 줄이 있지 우리 동네에서 가장 …

    •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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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2>달아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2>달아

    달아 ― 김후란(1934∼ ) 달아 후미진 골짜기에 긴 팔을 내려 잠든 새 깃털 만져주는 달아 이리 빈 가슴 잠 못 드는 밤 희디흰 손길 뻗어 내 등 쓸어주오 떨어져 누운 낙엽 달래주는 부드러운 달빛으로 이번 추석에는 무슨 소원을 빌까. 달 중에 제일은 보름달, 보름달 중에 제일은…

    •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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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모데미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모데미풀

    모데미풀 ― 문효치(1943∼ ) 하늘이 외로운 날엔 풀도 눈을 뜬다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있는 하늘의 손을 잡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아도 하늘은 눈물을 그치며 웃음 짓는다 외로움보다 독한 병은 없어도 외로움보다 다스리기 쉬운 병도 없다 사랑의 눈으로 보고 있는 풀은 풀…

    •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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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강물이 될 때까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강물이 될 때까지

    강물이 될 때까지 ―신대철(1945∼ )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간데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

    •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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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간찰(簡札)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간찰(簡札)

    간찰(簡札) ― 이근배(1940∼ ) 먹 냄새 마르지 않는 간찰 한쪽 쓰고 싶다 자획이 틀어지고 글귀마저 어둑해도 속뜻은 뿌리로 뻗어 물소리에 귀를 여는. 책갈피에 좀 먹히다 어느 밝은 눈에 띄어 허튼 붓장난이라 콧바람을 쐴지라도 목숨의 불티같은 것 한자라도 적고 싶다. …

    •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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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풍경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풍경

    풍경 ― 김제현(1939∼ ) 뎅그렁 바람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만등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의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 한…

    •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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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풍장 27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풍장 27

    풍장 27 ― 황동규(1938∼ )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

    •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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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와온의 저녁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와온의 저녁

    와온의 저녁 ― 유재영(1948∼) 어린 물살들이 먼 바다에 나가 해종일숭어새끼들과 놀다 돌아올 시간이 되자 마을 불빛들은 모두 앞다퉈 몰려나와 물길을 환히 비춰주었다. 와온, 이라고 했다. 단어에서 풍기는 결이 곱다. 여기 등장하는 ‘와온’은 한 지역의 이름이다. ‘동쪽으로는 …

    • 201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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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긴 편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긴 편지

    긴 편지 ―홍성란(1958∼ ) 마음에 달린 병(病) 착한 몸이 대신 앓아 뒤척이는 새벽 나는 많이 괴로웠구나 마흔셋 알아내지 못한 내 기호는 무엇일까 생의 칠할은 험한 데 택하여 에돌아가는 몸 눈물이 따라가며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마음은 긴 편지를 쓰고 전하지 못한다 …

    •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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