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국립대 총장의 무게

  • 입력 200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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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이 병영을 빠져나와 교육까지 지배했던 1980년대 얘기다. 남자 대학생들은 2학년이 되면 전방부대로 들어가 훈련을 받았다. 학생들이 분신까지 하며 저항했던 ‘전방입소’라는 제도였다. 이때 대학 총장들도 가끔 전방부대를 찾았다. 입소한 자기 대학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그때의 의전을 보면 국립대 총장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총장이 탄 승용차가 사단 사령부 안으로 들어서면, 국기게양대 옆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는 재빠르게 별 4개가 그려진 깃발을 올린다. 민간인에 대한 최고 예우다. 청사 앞에 대기하고 있던 사단장은 총장 승용차의 문을 직접 열어 준 뒤 깍듯하게 거수경례를 한다. 청사 앞에는 총장을 태우고 전방부대로 갈 의전차량도 준비돼 있다. 이 차의 앞뒤에도 별 4개짜리 성판(星板)이 붙어 있다.

국립대 총장협의회에 가면 승용차 번호가 눈길을 끌었다. 끝자리가 ‘1111호’인 관용차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부산대 총장의 승용차는 ‘부산 1 가 1111’, 강원대 총장은 ‘강원 1 가 1111’이라는 식이다. 한 국립대 총장은 ‘1111호’가 너무 튄다며 ‘1231호’로 갈아 달았는데 후임 총장은 ‘1111호’를 되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그 지역 도지사가 그 번호를 쓰고 있었다. 도지사는 “미안하다”며 ‘6666호’를 내준 뒤 경찰에 ‘6666호’를 보면 예의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장관급 예우를 받는 국립대 총장들의 승용차 번호는 1990년에 대부분 평범한 번호로 바뀐다. 임명직 총장에서 직선 총장으로 바뀌는 시기와 일치한다. 직선 총장이라는 자부심과 사회 전반의 탈권위 분위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총장 직선제 이후 대학 총장의 주가는 더 올라갔다. 1990년 이후 교육부 장관을 지낸 16명(현 김진표 장관 제외) 중 대학 총장 출신이 9명이나 된다.

하지만 국립대 총장의 권위와 상징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엊그제 국립 목포대와 대구교대는 새 총장을 선출했다. 선출 과정이 예전과 달라 관심을 끌었다. 대학이 아니라 그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를 받아 총장을 선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개정된 교육공무원법에는 국립대 총장을 직접선거로 뽑을 때는 선거관리를 반드시 관할 선관위에 위탁하도록 되어 있다. 두 국립대 총장은 그 첫 케이스다.

서울대도 며칠 전 5월에 있을 총장 선거 관리를 선관위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속을 끓였겠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정운찬 총장은 “악법도 법이라는 생각에서 결정한 고육책”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미 다른 교수들도 헌법소원과 이 법의 효력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내놓고 있다. 개정 교육공무원법이 대학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교수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대학 스스로 ‘외세’가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총장 선거에서는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편 가르기, 인신공격,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포, 반대급부 약속 등 학교 밖의 못된 정치판을 고스란히 흉내 냈다. 지성인의 집단이라면서 초등학교 반장선거만큼의 신뢰조차 보여 주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총장 직선제도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가져다준 귀한 선물이다. 이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선거관리권을 되찾아 오고 싶다면 대학이 먼저 자정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 그리고 그 의지를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고, 강력하게 실천해야 한다. 악법도 나쁘지만,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태와 무능도 악법만큼 나쁘다. 대학 총장의 무게는 대학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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