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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억 원 들어갔다는 ‘아스달 연대기’, 작품성·CG 보다 더 큰 실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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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억 원 들어갔다는 ‘아스달 연대기’, 작품성·CG 보다 더 큰 실망은…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입력 2019-06-20 16:30수정 2019-06-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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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작과 관련된 인물이나 주연 배우의 이름이 나오는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과 엔딩 타이틀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역학관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엔 장동건이 나오는 영화의 오프닝, 엔딩 타이틀을 분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짓이 그의 영화보다 대개는 더 재밌다.

1972년생 동갑내기 배우인 장동건과 김명민이 출연한 영화 ‘브이아이피’(2017)를 보자. 북에서 내려온 당 고위층 아들이자 살인마인 이종석을 잡으려는 열혈형사 김명민과 이를 방해하는 국정원 요원 장동건의 갈등을 그린 이 영화에서 딱 한 명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김명민이다. 그런데 오프닝 타이틀에는 장동건, 김명민의 순서로 이름이 나온다. 영화가 끝나면 반대로 김명민, 장동건의 순서로 이름이 다시 나온다. 지난해 3월 개봉한 영화 ‘7년의 밤’을 들여다볼까.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한 소녀를 죽인 소심한 남자 류승룡이 소녀의 아버지인 살인마 장동건의 복수에 직면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 시작부에는 당연히 류승룡의 이름이 장동건보다 먼저 나오지만, 엔딩 타이틀에는 장동건의 이름이 류승룡보다 먼저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하면, 이들 영화가 장동건의 이름값 때문에 그를 어떻게 예우해줘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단 얘기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조선시대 좀비를 다룬 영화 ‘창궐’에 와서야 뼛속부터 악당인 배역을 맡은 장동건의 이름은 영화 도입부와 끝부분 공히 속 시원하게 현빈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오는 것이다.


[2]540억 원이 들어갔다는 ‘아스달 연대기’는 비록 TV 드라마지만, 앞서 언급된 영화 브이아이피나 7년의 밤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세 작품 모두 쫄딱 망했거나 망해가고 있고, 세 작품 모두 주연인 듯 주연 아닌 주연 같은 장동건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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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가 망해가는 이유를 두고 ‘왕좌의 게임’ 같은 미국 드라마 속 설정을 따라한 독창성 부족 때문이라는 둥, 컴퓨터그래픽이 조악해서라는 둥, 뇌안탈 와한족 어라하 같은 머리 터지는 단어 때문이라는 둥 분석이 많지만, 나는 한 마디로 장동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동건이 연기를 잘 하네 못 하네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장동건에 대한 필요 이상의 존재 인정이 이 드라마를 망쳤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장동건은 “제가 연기할 ‘타곤’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없는 미묘한 캐릭터이기도 해서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고 설명했다. 바로 그렇다. 이 드라마가 망한 이유가 바로 ‘굉장히 입체적이고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없는’ 그의 캐릭터 때문이니 말이다.

아스달 연대기의 핵심 주인공은 구원자 ‘아라문 해슬라’인 송중기이다. 송중기가 자기 안에 숨은 메시아의 권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죽이고 세상을 손안에 넣으려는 장동건에 맞서는 것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예수 같은 헤어스타일로 나오는 장동건이 착한 놈도 아니고 나쁜 놈이 아니게 표현된다는 점에 있다. 장동건은 자신이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는 사실에 끌려 배역을 수락했겠지만, 바로 여기서 송중기와의 선악구도가 붕괴되면서 갈등의 비등점이 확 낮아지는 자충수가 초래되고 말았던 것이다.

장동건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둘 다 인지 헷갈리는’ 인물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나쁜 놈’을 연기했어야 했다. 야만족의 피가 흐른다는 태생적 열등감, 평생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해온 인정욕망 같은 설정은 악당으로서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로 작동했어야 했다. ‘SKY캐슬’의 김서형을 보라. 얼마나 마음을 내주고 싶은 악녀인가 말이다. ‘착한 놈은 주인공, 나쁜 놈은 조연’이 아니다.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최고로 진정성 있는 존재가 진짜 주인공이다.


[3]장동건도 실망이지만, 송중기는 더 큰 실망이다. 2017년 10월 송혜교와의 결혼 후 첫 작품으로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게 실망 중 실망이다. 청춘스타가 서른 두 살 커리어의 정점에서 결혼하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하지만 송중기는 여기서 더 어린 척, 더 날 것인 척, 더 싱싱한 척한다. 난 송중기가 이런 순수하고 섹슈얼한 늑대소년 같은 배역을 통해 자신의 결혼을 ‘극복’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대신, 오히려 더 성숙하고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배역에 도전했더라면 그를 더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전도연이 ‘해피엔드’를 통해 스스로를 뒤집고 파괴하면서 신세계로 전진했듯 말이다.

왜 톱스타들은 하나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을까. 왜 그러다 더 큰 추락을 운명처럼 맞이하게 되는 걸까. 여성들이 끌리는 유부남의 모습은 ‘총각인 척’ 기를 쓸 때가 아니라,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을 때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말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이 나라고 생각하겠지만, 톱스타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모르는 것 같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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