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원수]포렌식 수사전문가 배제, 수상한 ‘드루킹 특검’ 추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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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정치부 차장
정원수 정치부 차장
“제가요? 몰랐어요. 뜻밖인데요.”

검사 출신 A 변호사에게 6일 전화를 걸어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이른바 ‘드루킹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금시초문이라는 거다. 디지털 장비를 분석해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디지털포렌식이라는 용어마저 생소하던 2000년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기업 분쟁 수사 때 모바일포렌식으로 실체를 밝혀낸 이력이 있다. 차명 휴대전화 170여 대를 동원하고, 비밀 대화방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댓글 여론조작 사건 수사의 적임자일 수 있다. 그런데 왜 A 변호사 이름은 국회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제1야당 원내대표의 단식투쟁과 천막농성, 그로 인한 42일간 국회 마비는 사실 특검 도입 여부보다는 수사의 키를 쥐게 될 특검 추천권에 대한 이견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최순실 특검법처럼 야당 몫”이라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더불어민주당이 “태극기 부대 변호인이 특검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맞섰다. 바른미래당이 변협 추천이라는 대안을 제시해 양당은 중간 지점에서 타협했다. 이 결단이 국회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긴 했지만 한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자화자찬처럼 ‘정의의, 진실의, 국민의 특검’으로 이어질까. 의문이 가시지 않아 추천 과정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변협 사무실. 특검 후보를 뽑기 위한 특검추천위원회 회의가 소집됐다. 추천위원 11명 중 참석한 10명이 보안각서에 서명했다. 회의는 3시간 반 걸렸지만 규정을 정하는 데 2시간이 지났고, 추천 논의는 후반부 절반 이하였다. 국회 합의 직후인 지난달 16일부터 21일까지 변협은 전국 2만4000여 명의 회원과 각 지방변호사회 등에서 추천을 받았지만 14명을 추천한 기관과 이유를 추천위원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이 낫다”는 변협 지도부 방침에 따라 각계 추천 65명 중 검사 출신 변호사 14명의 프로필과 관련 언론 보도만 제공됐다.

투표 직전 1명이 추가로 거부 의사를 알려와 13명으로 줄었다. 추천위원 10명이 각자 13명의 후보 중 추천될 만한 4∼6명을 골라 이름 옆에 ‘○’ 표시를 했다. ‘1위 임정혁 전 대검찰청 차장, 공동 2위 A 변호사와 허익범 전 인천지검 공안부장, 공동 4위 김봉석 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장과 오광수 전 대구지검장, 6위 B 변호사….’

추천 숫자 없이 순위만 공개했다. 그런데 여기서 후보 4명을 최종 선정하는 과정이 더 석연찮다. A 변호사가 아무런 설명 없이 제외됐다. “김 전 부장검사는 특검 수사 대상인 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와 동향(同鄕)”이라는 이의 제기는 무시됐다. 만약 김 전 부장이 빠졌다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대형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B 변호사가 추천될 수 있었다.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역대 7번째 특검 추천권을 갖게 된 변협은 “성역 없는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진상 규명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후 “이사회 승인 없는 추천은 위법” “일부 인사에 대한 정치권 또는 변협 집행부의 사전 낙점 의혹” 등 공정성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건 변협 추천을 기다렸다는 듯 검증도 하지 않고, 다음 날 4명 중 2명을 곧바로 청와대에 전달한 야3당이다. “하루빨리 수사가 이뤄져야 해 대승적으로 결단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정말 몰랐을까, 알고도 모르는 척한 건 아닐까라는 의심도 든다. 흔히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타협의 성과가 그다지 ‘예술’ 같진 않다. 그동안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운다고 했는데, 이게 과연 최선의 결과인가. 정치권의 부끄러운 민낯이 따로 없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드루킹 특별검사#디지털포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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