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KBS에서 밀려난 ‘고려史’

  • 입력 2004년 8월 2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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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고려사 전체를 다루겠다더니 웬 이순신?”

KBS가 주말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이후 삼별초의 대몽(對蒙)항쟁과 공민왕의 개혁정책을 다루려던 계획을 접고 9월 4일부터 ‘불멸의 이순신’을 방영키로 한 데 대해 KBS 내부에서 말들이 많다.

고려사 조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선 왕조로 넘어간 대목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극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코드 맞추기용 드라마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KBS는 박권상 사장 시절인 1999년 11월 경북 문경 ‘태조 왕건’ 야외세트장에서 대규모 상량식을 갖고 “앞으로 10여년간 고려사 전체를 드라마로 다룰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KBS는 이를 위해 문경시와 10년간 부지 무상임대 계약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무인시대’는 이른바 황금시간대 편성에서 밀려났다. KBS1 TV 오후 9시 메인 뉴스 직후의 시간대를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토요일)와 시사 프로그램 ‘취재파일 4321’(일요일)에 내주고 오후 10시10분으로 편성된 것이다.

‘무인시대’에 대한 홀대는 결국 고려사 시리즈 중단으로 이어졌다.

김현준 드라마1팀장은 “고려사 시리즈를 3편 연속 방영하면서 세트나 의상의 차별화가 안 돼 어려움이 컸고 ‘무인시대’를 홀대한 감은 있으나 고려사는 앞으로도 계속 다룰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극찬하기 이전에 구상됐기 때문에 코드 맞추기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고려사 시리즈’ 10년 방영은 전임 박권상 사장이 시청자들에게 공언한 사항이다. 사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같은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무시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고려가 고구려의 옛 땅을 찾기 위해 품었던 요동 정벌의 장쾌한 꿈을 TV로 보지 못하게 된 점도 아쉽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상황이어서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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