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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 Face to Face] “사장 해임 않으면 ‘판도라 상자 열겠다’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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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 Face to Face] “사장 해임 않으면 ‘판도라 상자 열겠다’ 협박”

윤영호 기자 입력 2016-11-22 11:40수정 2016-11-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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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조한규 전 사장이 털어놓은 ‘정윤회 문건 사건’ 비화 ● 문건 속 정윤회 발언 “국세청이 개판이다”
● “10명(십상시)이 한 번에 모인 적 없다고 찌라시라니…”
● 정부 관계자, 한학자 총재에게 전화로 사장 해임 압력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처음 정윤회 문건 보고를 받고 “내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형우 기자
2014년 11월 28일자 세계일보 1면 머릿기사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은 청와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문건을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자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 씨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을 통해 국정 농단을 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

청와대는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즉각 반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 유출 사건은 국기 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보도 당일 이재만 대통령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은 세계일보 사장과 편집국장,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조한규 당시 세계일보 사장은 “제보자들은 ‘나라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우국충정에서 세계일보에 문건을 넘겼다고 본다”면서 “당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된 현재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 전 사장을 11월 18일 만나 문건 보도 전후 상황에 대해 들었다.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 결과를 본 이후 전화로 보충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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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보도한 문건 내용뿐 아니라 당시 검찰 수사 내용에 대해서도 재수사하라는 요구가 높다.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검사법에 따라 임명된 특검이 다뤄야 한다. 당시 문건 내용에 따르면 인사권을 청와대가 아니라 이른바 비선이 중심이 된 제2 청와대가 행사했다. ‘국세청이 개판이다. 국세청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윤회의 언급도 나온다. 권력기관 인사를 거기서 다 주물렀다는 얘기다. 경찰 인사를 안봉근 전 비서관이 다 주물렀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일보가 당시 보도했다. 또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 보면 ‘법원이 문제다’라는 언급이 나온다. 사법부까지도 비선 실세들이 장악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 다음에 총선 공천에도 개입해 입법부도 장악하려 했다. 촛불 집회에서 ‘이게 나라냐’는 구호가 나올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권한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양했기 때문에 헌정 질서를 문란케 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 여파로 해임된 조한규 전 사장은 무죄네트워크를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형우 기자


-보도 이후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형식은 제도화됐지만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승자독식 체제로 인한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언론 자유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언론 자유는 다른 자유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언론을 탄압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 와중에도 청와대에서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지 않았느냐.”

-문건에 대해서는 언제 보고를 받았는가.

“2014년 9월 중순경 편집국장이 청와대 문건을 입수했고, 상당히 오랫동안 취재를 했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팩트를 철저히 확인하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 부분은 조심하라고 원론적인 주문을 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내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세계일보가 특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뭔가.

“2013년 10월 14일 세계일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세계일보의 위상을 높이려면 여든 야든 성역 없이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 전에 청와대 내부 상황을 담은 기사를 내보냈던 것도 이런 차원이었다. 그러다보니 정윤회 문건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고 본다. 박관천 전 경정도 그 나름대로는 박 대통령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문건을 건넸던 것으로 보인다. 취재 기자가 경찰 쪽에 발이 넓었고, 취재도 정말 열심히 했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당시 취재기자가 문고리 3인방 등 ‘십상시’가 정기적으로 모였다는 서울 강남의 중식당 주인을 서너 차례 만나는 등 열심히 취재했다. 다만 10명 전체가 모인 적은 없었고, 이들 가운데 3, 4명씩 팀을 이뤄 정윤회와 회동을 했는데, 문건에 나온 대로 10명이 한꺼번에 모였다고 기사를 썼다. 나중에 검찰이 식당 주인에게 ‘10명이 모인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고, 주인이 부인하자 문건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청와대에서도 기사의 전후 맥락을 따지지 않고 ‘10명이 한꺼번에 모인 적이 없으니 찌라시’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졌지만 최순실도 그 후에 그 식당을 여러 차례 이용하지 않았느냐.”

-당시 청와대 쪽 반응이나 움직임은 어땠나.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홍보수석실 내부에서는 ‘무슨 선물을 줘서 달래든지 대화로 해법을 모색하자’는 방향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악의적 감정으로 보도한 게 아니라 세계일보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차원에서 언론의 사명감을 발휘한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관할하는 교문수석실 쪽으로 넘어가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교육부는 통일교 산하 선문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문체부 종무실은 종교 문제를 다루지 않느냐. 통일교 쪽에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2015년 1월 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동원해 통일교 관련 회사에 대해 특별세무조사까지 실시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조 사장을 찾아온 날 특별세무조사가 시작됐다고 하던데.

“정윤회-최순실 라인에서 국세청을 동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국세청에서 뒤져봤지만 조사 대상 회사들의 매출액이 70억, 80억 수준인데 나올 게 뭐가 있었겠는가. 국세청 내부에서도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

-세무조사 등으로 통일교 쪽에서는 비상이 걸렸을 텐데.

“유경석 통일교 한국회장은 대놓고 사임하라고 했다. 나는 ‘3개월만 시간을 주면 세계일보를 정상의 신문으로 만들어놓겠다’고 하면서 버텼다. 2014년 말 일어난 대한항공 조현아 당시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특종 보도 등을 통해 세계일보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통일교를 다시 보게 됐다는 사람도 늘지 않았느냐고 했다. 유경석 회장은 당시 굉장히 당황스러워하고 상당히 얼어 있었다. 그러나 자진 사퇴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 결국 통일교측은 문건 보도 다음해 2월 27일 세계일보 이사회를 열어 해임했다.”

-통일교의 교주인 한학자 총재의 반응은 어땠는가.

“한학자 총재는 처음엔 나를 해임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통일교 내부에서는 한쪽에서는 나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건 보도 이후 통일교에 호의적인 인터넷 댓글이 많이 올라왔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일부 목사들은 ‘조한규 사장이 잘하는데 왜 버려야 하느냐’고 한 총재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가 하와이에 머물던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조한규 사장을 내보내지 않으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겠다’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그는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알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통일교 주변에서는 통일교 관련 회사들의 비리 의혹을 거론한다.

-그만큼 정권이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사장으로 있는 한 문건 보도를 주도한 당시 편집국장과 사회부장, 특별취재팀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고 더 불안했을 것이다. 나로선 나 혼자 살자고 이들을 교체할 수가 없었다. 마침 편집국장도 임기 2년을 마쳤고 해서 다음해 2월1일자로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으로 승진시켰다. 특별취재팀의 성과를 인정한 인사였다.”

-해임 이후 세계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세계일보 정관에 따르면 이사 임기는 3년으로 정해졌다. 당연히 잔여 임기에 해당하는 연봉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법인카드를 많이 썼다는 식으로 음해했다. 또 한편으로는 외부에 ’조한규 전 사장에게는 크게 보상했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론자유를 위해 노력했다는 기록을 역사에 남기는 차원에서도 소송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하자 통일교에서 뒤늦게 지급했다. 그나마도 상당 부분 깎아줬다.”

-문건 보도 직후 한학자 총재가 ‘세계일보가 폭탄을 더 가지고 있다. 더 강하게 나가라’는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한 총재는 ‘보도를 하고 정의롭게 하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안다.”

-세계일보 사장으로 발탁된 배경은.

“임명권자가 한 일이어서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통일교 내부에서 세계일보 국장급 이상 출신으로 경영 마인드가 있으며 기자들에게 신망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조사했는데 내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런 평가를 해준 기자들이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한 소회는?

“처음 정윤회 문건 내용을 보고받고 ‘이러다 나라가 엉망이 되겠구나’ 싶었던 내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라도 바로잡았으면 오늘 같은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공식 조직과 별개로 또 다른 청와대가 있었던 셈이다.”

-앞으로 계획은?

“저술 활동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무엇이 인생을 바꾸게 하는가>는 곧 나올 예정이다. 또 사장에서 물러난 이후 무죄네트워크를 설립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데, 이 단체 활동을 통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조한규#세계일보#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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