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미란다 줄라이 감독-주연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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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동숭아트센터
사진 제공 동숭아트센터
극장에서 상영 중인 ‘미 앤 유 앤 에브리 원’(원제 Me & You & Everyone We Know·나 당신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두)을 보고 나오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만 외로운 것은 아니었구나.’

미국의 한 조용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에서는 시공을 초월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란, 결국 그렇고 그런 것이란 동질감이 느껴진다. 영화는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사랑, ‘원하지만 불가능한’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지식은 많지만 지혜는 없고, 만나는 사람은 많지만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툰 다양한 연령대의 현대인들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낮에는 노인 전용 콜택시를 운전하며 생계를 꾸리면서 장래 예술가를 꿈꾸는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틴과 그가 연모하는 신발가게 점원 리처드가 주인공이다. 크리스틴은 사랑이 넘치지만 나눌 상대가 없어 늘 허전하고 리처드는 결혼 실패의 여진에 아이들까지 떠맡아 허우적댄다.

영화 속 어른들의 내면은 미숙한 대신 아이들은 조숙하다. 일곱 살배기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에 방치돼 주변에 널려져 있는 ‘성(性)’에만 집착한다. 엄마가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나 버리는 바람에 아버지인 리처드와 함께 살게 된 10대와 일곱 살 난 두 아들(피터와 로비)은 아버지와 대화를 거부하며 컴퓨터 놀이와 야한 인터넷 채팅 사이트 접속에만 몰두한다. 이웃집 중년 남자에게 은근한 성적 눈길을 보내던 피터의 같은 반 여학생 두 명은 그 남자가 매일 자기 집 창가에 붙여 놓는 성적 희롱이 담긴 글에 고통받는다. 그러면서도 피터에게 오럴 섹스를 실험하며 자신들 역시 그를 성적으로 학대한다. 피터의 이웃집 소녀 실비는 20년 뒤에나 있을지 모르는 결혼생활에 대비해 용돈을 아껴 가며 혼수품을 모으는 게 유일한 낙이다. 겉으로는 다들 멀쩡하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는 무거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화는 따뜻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도 너처럼 약하고 상처받은 존재이지만 (제목 그대로) 나, 너, 우리 모두는 서로 껴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서른셋 나이에 이 영화 한 편으로 미국 독립 영화계 최고 스타(지난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로 부상했다는 여성 감독 미란다 줄라이는 주인공(크리스틴) 역까지 소화해 냈다. 그녀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사랑과 ‘휴머니즘’은 전염될 만큼 강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곳인가. 삶의 단순함은 ‘복잡함’을 전제했을 때 빛을 발한다. 아직 타인(관객)과의 소통보다는 혼자(감독) 말에 더 익숙할 수 있는 30대라는 나이를 감안할 때, 은유나 복선보다 직선과 주장이 강한 대목들은 이해는 되지만, 영화 전체의 무게감을 떨어뜨린다. 15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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