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가인열전]<15>김건모

  • Array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발라드 R&B힙합 펑키… K-pop의 이정표가 되다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김건모는 다양한 욕구를 분출한 1990년대 청년층을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듯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다. 동아일보DB
김건모는 다양한 욕구를 분출한 1990년대 청년층을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듯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다. 동아일보DB
197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혁명적 낭만주의의 미학이 자유분방하게 개진되던 연대기라고 할 수 있고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양지와 음지 모두 강렬한 카리스마가 분출되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면 1990년대의 그것은 아마도 스타 시스템에 기반한 재능과 개성이 백가쟁명을 이룬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92년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김건모가 데뷔한 지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라는 비정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뮤지션 중에서도 가장 많은 히트곡을 기록한 인물이며 1995년 벽두에 발표했던 네 번째 앨범이 기록한 280만 장이라는 판매량은 아마도 깨지기 힘든 불멸의 전설로 남을 것이 명백하다.

김건모는 멀티 밀리언 시대에 멀티 장르를 지배한 멀티 엔터테이너였다. 라인기획의 수장 김창환과 더불어 철저한 훈련과 정교한 전략을 바탕으로 빈틈없는 완성도를 지닌 ‘핑계’를 앞세운 2집(1993년)을 제작했고 이 앨범은 ‘난 알아요’와 ‘환상 속의 그대’가 담긴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1990년대 주류 대중음악의 이정표가 되었다.

200만 장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올리며 1994년 상반기의 시장을 장악한 이 앨범은 미국 시장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1983년) 앨범이 그랬던 것처럼 1990년대 한국의 대중적 감수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꼭짓점이 되었다. 이 앨범을 통해 김건모는 ‘혼자만의 사랑’을 내세워 흑인 음악의 내음이 충만한 리듬앤드블루스 스타일의 발라드 장르를, 그리고 ‘핑계’를 통해 레게라는 댄스뮤직의 장르를 아우름으로써 당대 한국 대중음악의 두 주류를 포괄하는 종합력에 가세한다. 리듬앤드블루스 발라드, 레게, 힙합, 하우스 뮤직, 언플러그드, 펑키…. 그가 수록곡들에 명명한 이 다양한 장르의 명칭들은 입체적인 욕망을 지닌 1990년대의 신세대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로 작정한 김건모의 출사표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수많은 경쟁자와 구별되는 김건모의 가장 중요한 재능은 이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는 비범한 보컬이다. 그는 그의 앞 세대를 장악했던 슈퍼스타들처럼 강인하고 드라마틱한 흡인력보다는 거의 본능적인 리듬감으로 각 악절의 매력을 시원시원하게 풀어간다. 그의 보컬은 사색과 성찰을 거부하고 감성의 질주에 몸을 맡기려는 1990년대 세대의 기호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김건모에게 절정의 영광을 안겨준 ‘잘못된 만남’으로 불붙은 속도 경쟁의 가혹한 비트 감각은 하루가 바쁘게 표변하는 현대 대중문화의 감수성을 은연중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7년의 다섯 번째 앨범 ‘Myself’부터 그는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한다. 인트로를 포함해 무려 열다섯 트랙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앨범의 볼륨이 말해주듯이 이 앨범은 이립(而立)의 경계를 넘어선 김건모 개인의 방향 전환에 대한 숙고였고, 속력과 영상 이미지로 아롱졌던 1990년대 주류 대중음악 문법에 대한 종합적인 성찰이며, 한국 음반 시장의 주력을 형성해온 10대 아이돌 음악의 매너리즘에 대한 회의에 찬 질문서였다.

속도의 복마전에서 벗어나 더욱 성숙한 사랑의 드라마를 구축한 자작곡 ‘사랑이 떠나가네’와 대구를 이루는 것은 1990년대 초 벗님들의 ‘당신만이’를 리메이크한 트랙이다. 그는 이 아름다운 소프트 록 넘버를 1990년대의 감성으로 재창조한다. ‘당신만이’에서 2011년 ‘You are My Lady’에 이르는 그의 리메이크 리스트는 김광석의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도들이다.

앨범이 거듭할수록 그는 더 유연해지고 음영이 짙어졌지만 목소리의 광채는 사라지지 않았다. ‘허수아비’나 ‘잔소리’, ‘정’ 같은 2000년대의 노래들은 비록 메가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어도 충만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절창들이다.

김건모, 그는 케이팝(K-pop)이라는 제국의 초대 황제였다. 그가 갖지 못한 것은 위엄뿐이다. 하지만 그 위엄은 앞으로의 20년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될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