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20>사는 게 맛있다

  • 입력 2009년 1월 7일 02시 59분


◇사는 게 맛있다/푸르메재단 엮음/이끌리오

《“희망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피워내는 희망은 작고 초라할지도 모르지만 그 희망이 옆 사람에게 전염되고 또 그 옆 사람에게 전파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다면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불행한 삶에 퍼뜨린 ‘희망 바이러스’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시 무대에 오른 가수, 심한 화상으로 이전의 얼굴을 잃고도 자신보다 더 힘든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20대 여성,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돌보는 탤런트…. 이 책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 23명이 전하는 ‘희망 바이러스’다.

댄스그룹 클론의 가수 강원래 씨는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분노하고 좌절하다가 현실을 수용하기까지의 경험담을 전한다.

힘내라고 격려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퍼붓던 그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다 ‘휠체어 유럽여행’으로 알려진 박대운 씨를 만나고, 그를 통해 다른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박 씨의 충고가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휠체어댄스’로 무대에 복귀했다.

이화여대 4학년 때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후 가까스로 살아난 이지선 씨는 사고 이후 “삶이 더 맛있어졌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뒤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떨던 그는 곁을 지켜준 오빠로부터 눈물 섞인 격려의 말을 들었다.

“지선아, 그래!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겠어?”

그는 더 떨어질 바닥이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이후 “훨씬 더 맛있는 삶”을 얻었다. 마디가 잘려나가 짧아진 손가락 여덟 개의 몫까지 해내는 엄지손가락에 감사했고, 이식한 피부를 뚫고 나온 눈썹 한 가닥에 감동했다. 재활 치료를 마치고 병실을 나온 그는 남은 인생을 장애인 재활 지원에 쏟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를 다녀온 탤런트 김혜자 씨의 글에는 눈물이 담겨 있다.

김 씨가 본 라이베리아는 14년의 내전으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약도 없는 나라였다. 항생제 한 알이면 낫는 상처를 그대로 방치해 다리를 잘라야 했던 아홉 살 소녀, 마취약이 없어 곪은 부위의 생살을 도려내는데도 허기에 지쳐 축 늘어져 있는 젊은 여성….

김 씨는 “우리의 도움을 구하는 이에게 복이 있나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일이므로”라는 ‘장애인들을 위한 산상수훈’ 시 구절을 읊으며 도움을 주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인 김용해 신부(예수회)는 불행을 계기로 장애인 재활병원 설립에 나선 한 부부의 이야기를 전한다. 1997년 김 신부가 독일에 체류할 때 독일 통일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뮌헨에 왔던 신문기자 백경학 씨와 아내 황혜경 씨의 사연이다.

백 씨 부부는 1998년 여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유럽여행을 떠났다가 불행을 만났다. 여행 중 교통사고로 아내 황 씨가 한쪽 다리를 잃은 것.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스스로의 재활에 멈추지 않았다. 사고 보상비 10억 원과 개인 재산을 들여 장애인 전문 재활병원 설립에 나서 2005년 3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병원 설립을 추진할 푸르메재단을 만들었다.

김 신부는 “이들 부부는 오히려 다리를 잃고 나서 영원한 걸음걸이를 힘차게 내딛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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