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6>무지개 가게

  • 입력 2008년 12월 31일 02시 59분


《“가난한 사람들은 빚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휠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인간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로 재기하는 사람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씨는 소액대출제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시장경제에 적응시켜 온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자립기금대출)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돼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다.

사회연대은행은 우리나라에서 이 모델을 적용시켜 2002년 설립된 은행이다. 이곳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운영되는 가게에는 ‘무지개 가게’란 이름이 붙는다. 이 책은 갖은 역경을 딛고 주꾸미 전문점, 옷가게, 오리 요리 전문점, 꽃집 등 각자의 무지개 가게에서 일하며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냈다.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이들은 고난에 굴하지 않고 건강한 재기의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용기 있는 이웃들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온 화물트럭에 치여 학창시절 척수장애 1급이 된 한 장애인은 경기 고양시 일산의 직업전문학교에서 무릎관절이 파손돼 운동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딸보다 장애가 심한 사위를 곱게 보지 않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겹게 결혼을 했지만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일산에서 세탁소를 차렸지만 이중계약 문제 등으로 권리금도 건지지 못한 채 쫓겨나고 장애 때문에 재취업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은 현재 사회연대은행에서 대출받은 자본금 등으로 로또와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매장을 꾸리며 열심히 살고 있다.

무심코 쓴 신용카드 대금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자신은 물론 여자친구까지 신용불량자가 되고 월급 압류 등으로 회사까지 그만두게 된 사연도 있다.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사랑스러운 딸도 태어나지만 살림을 어떻게 꾸려갈지는 막막하기만 했다. 식품 유통업체, 대리운전, 건축자재 유통업 등을 전전하던 남편은 대출받은 자본금으로 건축·전자·산업용 실리콘 도매 유통을 시작했다. 일이 안정되면서 용기를 얻은 그는 자신의 가게를 사업으로까지 확장해 볼 희망도 품게 됐다.

이들의 수기에서는 삶에서 닥치는 불의의 사고들과 뜻하지 않은 실패들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다. 타고난 환경 자체가 불우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남편의 잦은 외도와 술주정, 뒤늦게 발견하게 된 아들의 희귀병, 하루아침에 정신장애 판정을 받게 된 남편 등 감당하기 힘든 상처들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삶을 포기하는 대신 갱생의 길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미래를 일구는 이들의 사연은 감동과 숙연함을 전해줄 뿐 아니라 이들의 도전을 격려하고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지금까지 전국에는 총 495개의 무지개 가게가 생겼다. 빌린 돈을 모두 상환한 가게도 늘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다른 어려운 이웃을 후원하는 가게도 생겼다고 한다. 생활 속의 변화들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출발점임을 깨닫게 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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